김숭 목사
21세기가 열린 지 벌써 4년째다. 해(year)를 알리는 네 자리 숫자 중 첫 수가 ‘1’에서 ‘2’로 바뀌며 오갔던 흥분이 언제 있었냐는 듯, 바뀌기 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온 지 이미 오래다.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는데 그땐 왜 그리도 법석을 떨었을까? 어쩌면 시간의 단순한 흐름인데도 거기에 주관적 의미를 애써 부여하려는 인간들의 상술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나 하는 의심마저 든다.
그런 주관성의 극치는 21세기의 코드를 ‘문화’라는 단어로 집약하는 데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 현상은 멀리 갈 필요 없이(지리적 거리가 아니라 정신적 거리), 우리의 조국에서도 있었다. 대통령마저 자신의 닉네임을 ‘문화대통령’이라 하면서, 대통령으로서의 자신의 선진성을 그렇게 홍보하지 않았던가? 이런 현상은(문화를 21세기의 최고의 화두로 삼은 것은) 이젠 그만큼 먹고살기 편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라! 먹고살기 힘든 그 시대에 문화를 외치며 살았던가? 일제식민, 6.25동란, 보릿고개 시절에 그것을 삶의 주제로 일삼았더라면 아마 ‘배부른 자들’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한국의 추세만은 아니다. 세계가 다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아무리 설명해줘도 무슨 뜻인지 모를(문과적 성향인 필자의 경우는 특히) 아날로그 방식이니 디지털 방식이니 하는 데서 문화적 후진과 선진을 구분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배불뚝이화면인 텔레비전을 갖고 있으면 문화인 대접을 못 받는다. 평면이냐, 더 나아가 영화 화면처럼 옆으로 쫙 벌어진 것이냐, 공간을 잡아먹는 브라운관이냐 아니면 벽걸이식이냐, 이젠 앞서기보다 따라잡기가 더 힘든 판국이 되어버려, 이 시대의 인간상의 척도를 문화적 테크놀로지의 소유에 두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의 걱정은 다른 게 아니다. 문화란 정말 좋은 것이나 그 문화적 기준을 다분히 감각적인 데 두고 있다는 것이 걱정이다. 물론 감각적인 게 나쁠 건 없다. 그러나 감각은 다분히 일시적이고 충동적이다. 닐 포스트만(Neil Postman)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책, ‘재미있어 죽을 정도로 즐기기’(Amusing Ourselves to Death)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대중들이 지엽적인 문제에 온통 정신이 팔리거나, 문화적인 삶이 끊임없는 오락거리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된다면 그 국가는 분명히 문화적인 죽음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래도 고급문화의 특성은 영원성일 것이다. 그러나 닐의 진단처럼, 이 시대의 사람들은 영원성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일단 재미만 있으면 된다. 재미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다. 그래서 심지어 죽도록 즐긴다.
한 교회의 목회자로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역시 이 점이다. 교회도 그저 재미로 가득 차야만 하는 느낌이다. 영성과 관련된 모든 일도 일단 재미부터 있어야 된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이든 출발점과 도착점은 달라야 한다. 신앙에 있어서 ‘재밋거리’는 출발점이고 접촉점에 그쳐야 한다. 그래서 ‘재미’라는 접촉점으로 출발한 신앙은 영원하면서도 때론 무겁고 진지한 ‘진리’라는 도착지점에 이르러야 한다. 교회는 어떤 곳인가? 일시적인 재미에서 재미로 끝나야 하는 곳이 아니다. 때에 따라 비통하게 울면서까지 굳게 붙잡을 수 있는 영원한 진리가 발견되어야 하는 곳이 교회다. 그런데도 교회마저 이 시대의 문화적 재미 현상에 계속 끌려가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어 안타깝다.
비단 교회 만이랴! 우리의 교포사회와 각 가정들을 이런 측면에서 한번쯤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기저기서 놀고 즐기는 모임만 늘어가는 것 같다. 그 동안 너무 앞만 보고 일해 온 것에 대한 후회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돌파구치곤 좀 궁색해 보인다. 닐 포스트만의 일침을 두고두고 되새길 필요가 있다. 마냥 죽도록 즐기기만 하면 문화적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목사로서, 일시적인 재미보다는 영원한 진리 문제로 이 시대의 최대의 이슈인 ‘문화’라는 열차에 동승하는 교포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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