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안경산업계에서 우뚝 선 CSL의 김동국 사장
하루 6천개의 렌즈 생산시설 갖춘 공장 준공
“37년 전 한국산 안경테 샘플을 가방에 담고 흰색 폭스바겐을 몰아 무작정 세일에 나섰을 때 지금처럼 사업이 커질 줄은 몰랐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무일푼으로 안경사업을 시작, 지난 달 왓슨빌에 초현대식 공장을 지어 이전하고<본보 1일자 A1면 보도> 이제는 미국내 3천5백개 안경렌즈 제작소중 25대 대형 랩으로 성장시킨 김동국 사장의 일생은 ‘아메리칸 드림’ 그 자체의 역정이었다.
1934년생으로 올해 일흔이 된 김사장이 미국에 온 것은 1958년. 현재 경희대의 전신 신흥대학을 졸업한 김사장은 시애틀로 유학했다. 타코마의 퍼시픽 루터란 대학에서 학부 4년을 마친 김사장은 시애틀의 워싱턴 주립대학 로스쿨에 진학했다.
그후 LA의 퍼스트 아메리칸 타이틀 캄퍼니에서 법률관련 일을 하던 김사장은 한국에서 안경테를 제작하던 형이 미국으로 수출판로를 개척하자 이를 도와 1966년 산타크루즈에 ‘콘티넨탈 세일스 캄퍼니’에 파트너로 참여했다.
한국산 안경테의 품질이 아직 조악했던 시절, 회사가 문닫을 위기에 처하자 김사장은 67년 이를 단독 인수, 세일에 나섰다. “흰색 폭스바겐 비틀에 견본을 넣고 운전하며 전국을 누빌 때 하루 13달러밖에는 쓸 수 없었습니다”
김사장이 책정한 하루 13달러의 예산은 개스비 3달러80센트, 모텔비
6달러50센트, 그리고 식사 및 잡비 2달러70센트였다. “만약 전화를 걸어야 할 일이 생기면 꼼짝없이 한끼를 건너뛰어야 했지요”
김사장의 성실과 근면에 반한 고객들은 하나씩 오더를 주기 시작했고, 가주내에 30개의 대형매장을 가졌던 젬코사가 75년 김사장에게 안경테와 렌즈의 전량 납품권을 주었다.
이때부터 김사장은 현재의 상호 CSL Lab으로 상호를 등록하고 안경테
수입판매는 물론 렌즈제작에 이르기까지 전 공정을 맡게 됐다. 지난 37년간 수차례의 위기를 극복하며 CSL그룹은 성장을 거듭, 현재는 미시시피강 서쪽 13개 주에 최대의 렌즈제작사로 발전했다.
안과의사들이 주요 고객인 CSL의 현재 고객은 6천여개사에 달하며 월마트와 같은 대형매장에도 납품하고 있다.
지난 27일 왓슨빌에 새로 준공한 5천5천 스퀘어피트의 새 공장으로 본사를 이전하면서 CSL그룹은 또 다른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 공장에는 120여명의 직원이 일하면서 하루에 6천개의 렌즈를 주문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성실’과 ‘품질’을 사업철학으로 삼는 김사장은 아직도 은퇴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 “죽는 날까지 일하겠다”는 김사장은 일주일에 72시간 일한다.
지금도 연간 260일 이상을 출장지에서 보내며 구매와 세일즈를 직접 챙기는 김사장.
부인 방순자씨와의 사이에 태어난 두 아들도 곧게 자라 장남 마크는 롱비치 법원의 판사로, 차남 로버트는 변호사로서 아버지를 도와 CSL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다.
앞으로 3년후면 미국 주식시장 상장까지 계획중인 김사장의 사업이 어디까지 성장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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