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서 사망·실종한 상록수부대원의 유족들
“대통령님, 1년전 눈물로 한 약속을 잊으셨습니까.”
지난해 3월 동티모르에서 평화유지군(PKF)으로 활동하던 중 숨지거나 실종된 상록수 부대원 5명의 유가족들이 정부의 현지추모제 약속 불이행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4월4일 유가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위로하는 자리에서 조영길 국방장관에게 실종자 수색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하면서 1주년 현지추모제 추진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당시는 이라크 파병 문제로 보ㆍ혁 갈등이 심화하던 때로 노 대통령이 이들을 위로하면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장면이 보도돼 화제가 됐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1년이 다 된 지금까지 정부로부터 현지추모제에 대한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몇 차례 국방부에 추진 상황을 문의했지만 ‘기다려달라’ ‘검토중이다’라는 대답만 들었다”며 “아들의 유해도 못찾은 실종자 가족을 생각한다면 대통령과 정부가 우리에게 이런 대우를 할 수는 없다”고 항변했다.
사망ㆍ실종자들은 상록수부대 7진(432명)으로 2002년 10월 현지에 파견돼 7개월의 순환근무 원칙에 따라 지난해 4월 귀국 예정이었다.
귀국을 불과 1개월여 앞둔 지난해 3월6일 이들은 부대 본부에서 60㎞ 떨어진 오쿠시 중대 파견대의 발전기 고장 신고를 받고 차량으로 함께 출발했다. 수심이 얕은 곳을 찾아 에카트강을 건너던 중 폭우로 불어난 물에 앞에 가던 차량이 멈춰 섰다. 이들은 지프에서 내려 앞 차를 빼내려다 갑자기 밀려온 급류에 휩쓸렸다.
이 사고로 4명은 사망했고 김정중 병장은 실종됐다. 유족들은 1주년이 되는 이달 6일에 동티모르 사고 현장에서의 추모제 개최를 희망했고, 노 대통령은 사고 직후 적극 검토하겠다는 약속을 해준 것이다.
김 병장의 어머니 장홍녀(47)씨는 “국가의 부름을 받고 근무하다 사망한 장병의 유해를 찾아주기는커녕 추모제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어 분통이 터진다”며 “단 한번이라도 현지에 가서 아들의 이름을 원 없이 불러보고 싶다”고 울먹였다.
유가족 중에는 사고 이후 암 판정을 받고 투병중인 미망인도 있다. 민병조 중령의 부인 김혜영(39)씨는 남편을 잃은 뒤인 지난해 9월 병원에서 자궁암 진단이 내려져 수술을 받았지만 이미 암세포가 전이돼 힘겨운 항암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김씨는 “조국을 위해 명예롭게 숨진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간절한 소망을 밝혔다.
또 최희 병장의 아버지 최중배(64)씨는 “미국은 조국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복무하다 숨진 장병들을 정부가 나서서 끝까지 책임지는데 우리나라는 도대체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방부는 추모 1주기가 다가오면서 유가족들의 민원이 잇따르자 뒤늦게 절차 등을 논의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황재락기자 find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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