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덕<주부>
7살 때 나의 희망은 시골 할머니가 되는 것 이었다. 할머니 손을 잡고 나가면 동네 사람 누구나 인사를 하며 손녀가 예쁘다고 칭찬을 한다. 누구나 좋아하는 할머니. 나도 할머니가 되어야지.
9살이 되면서 바이올린과 더불어 부모로부터 부여 받은 것은 음악가가 되라는 명령 이였고 그것이 거역할 수 없는 나의 장래 희망이 되어 버렸다. 5학년 때 나를 유독 아껴 주시던, 사랑 많은 선생님을 좋아하면서 예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당시 반에서 제일 컸던 나는 자그마하신 선생님이 좋아서 키가 크지 않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 했었고 선생님과 똑 닮고 싶은 것이 나의 꿈이었다. 중학교 때 창 이란 제목의 글 쓰기가 힘들어 당시 유행하던 안약 광고 눈은 마음의 창 이라고 한 줄 베껴 놓고 친구들과 딴 짓 하는 것을 보시고도 야단치지 않으신 총각 선생님의 시와 미소가 좋아서 나도 작가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친구들의 모습에 매료 되었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그들의 예술 세계가 부러워서 무용수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어느것도 내게 강요된 바이올린을 포기 시킬 수 가 없었다. 마술이라도 걸어서 잘 하고 싶은 악기. 기가 막힌 연주를 할 수만 있다면 생명이라도 바꾸어 하고 싶은 악기. 하지만 절대로 내 마음대로 소리 내 주지 않는 야속한 악기. 악기를 하면서 좋은 날도 많았지만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실기 시험을 잘 못 켜서 속이 상하면 미술실로 가서 그림 그리는 친구와 함께 마음대로 낙서 수준의 그림을 그리곤 하면서 실수 없는 완성된 작품을 전시 하는 미술과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도 그림을 그렸으면.
그러면서 해가 바뀌고 다른 길을 가기에는 시간이 없음을 깨닫게 되자 음악에만 최선을 다 해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면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고, 그와 결혼해서 예쁜 딸 낳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렇듯 종횡무진 돌아 다닌 희망 이지만 생각해 보니 많이도 누리고 살았다.
교향악단 단원으로 바쁜 연주 활동을 통해 원 없이 음악 생활을 즐겼고, 학생들에게는 좋은 선생님 소리도 들었다. 예쁜 딸은 아니지만 가끔씩 딸처럼 귀엽게 구는 아들과 낙서 수준의 그림이지만 그림도 그리고, 늦게 배운 춤이지만 사랑을 춤으로 표현하며 마음껏 즐기기도 한다. 기분 나면 남편과 아들의 주머니에 넣어 주는 쪽지 편지로 우리집 작가 라는 화려한 호칭도 얻었고, 언젠가는 할머니가 되어서 손주에게 끝없는 사랑도 줄 것이다. 이렇게 오다 보니 어느새 장래 희망 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이제야 말로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좀 더 가치 있는 희망을 갖고 그것을 위해 살려고 준비하고 있다. 언젠가 그 꿈이 이루어 질 때, 진정으로 아름답게 마무리 될 내 인생의 장래 희망 2편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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