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존 케리의 아버지 리처드 케리는 직업 외교관이었다. 케리는 어린 시절 다른 아이들이 동네 축구를 하며 놀 때 아버지와 같이 국제 정세를 논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힘을 배경으로 한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염증은 그 때부터 이미 아버지의 무릎 위에서 싹텄다. 케리는 상원의원이 된 후에도 수시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케리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외교 정책을 펼 것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그의 아버지가 1990년도에 쓴 ‘별이 빛나는 거울’(The Star-Spangled Mirror)을 읽어보면 된다. 체코에서 탈출한 유대인을 아버지로 둔 케리의 아버지는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후 자기 아버지의 고향을 알기 위해 유럽으로 건너갔으며 미-유럽 동맹 강화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외교관이 된다.
국무부의 가장 열렬한 비둘기파의 하나이던 그는 미국의 정책이 자기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나가자 사표를 내고 이 책을 썼다. 그는 여기서 미국의 도덕적 우월주의를 비판하고 외국에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요하는 ‘사이렌 송’에 빠지지 말 것을 강조했다. 그는 또 소련을 일방적 침략자로 보는 것은 잘못이며 제3세계의 공산주의는 자생적 민족주의 운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00년에 사망했지만 그의 이런 정신은 아들 케리에 고스란히 계승돼 있다. 그는 예일 대 재학 시절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 주민들에게는 공산주의보다 서방의 제국주의가 더 큰 공포의 대상”이라며 미국의 제3세계 개입에 반대하는 연설로 웅변상을 받았다.
월남전에 참전 한 후 반전 운동에 앞장선 것이나 상원의원이 된 후 니카라과 반공 게릴라를 지원한 이란 콘트라 스캔들을 파헤친 것 모두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케리의 미국관은 ‘미국은 선’이며 ‘힘을 바탕으로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부시 대통령의 생각과는 정반대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여론 조사는 케리가 부시에게 10% 정도 앞서 있지만 올 11월 본선에서 이런 표 차가 그대로 유지되리라 보는 사람은 없다. 두 사람에 대한 지지도는 공화 민주 양당의 전당 대회를 전후에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결국 근소한 차이로 승부가 갈릴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만약 케리가 대통령이 된다면 대북 정책을 비롯한 미국의 외교 정책은 부시와는 현저한 차이를 보일 것이 분명하다. 르몽드지는 케리가 민주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되자 “북한도 그에게 투표했을 것”이란 기사를 내보냈다. 부시의 강경 노선에 속이 상해 있는 북한으로서는 하루 빨리 케리가 백악관에 앉기만을 학수고대할지 모른다.
한인들의 정치 참여 중요성은 귀에 못이 박히게 해온 이야기지만 올 대선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미칠 영향이라는 점에서 만도 한인 유권자들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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