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기자
만물의 아르케(arche-원리)는 물이다라고 말한 탈레스가 서양 철학사에서 최초의 철학자로 꼽히는 이유의 하나는 그가 남긴 이야기가 철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만물이 ‘물’이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생각의 저변에 있는 것, 즉 왜 이러한 생각을 했는가?, 라고 하는 탈레스의 문제의식 탐구와 고찰이 철학의 시조로 여겨지게 했는지도 모른다.
남아 있는 가장 오랜 된 철학 이야기가 탈레스의 것이기에 서양 철학사는 그가 남긴 이야기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인 이민역사 역시 이민 교회역사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불가분의 관계를 엮어왔다.
하와이 초기 이민 역사의 자료에는 이민 역사가 한인 교회역사와 함께 시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인 이민교회의 역사를 통해 이민 역사의 재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민사회 교회의 역할은 종교적인 면과 함께 사회적인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초기 이민교회는 독립운동을 돕기 위해 후원금을 마련하였고 본국의 만세운동과 때를 맞추어 거리를 행진하며 한국의 정세를 세계의 언론에 여론화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새크라멘토 지역에서도 1919년 4월 10일, 다운타운 K st에서 북가주 지역의 교민 260명이 모여 만세를 부르며 행진한 사건이 당시 새크라멘토 비 신문에 났었던 기록이 아직도 보관되어있다.
이 사건은 교회가 중심이 되어 사회적인 문제를 이슈화하고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다는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동양인이 적었던 당시의 미국사회는 한인들의 자녀들은 미국인 학교에 갈 수 없어서 중국인이 운영하는 학교에 다녀야 했던 상황이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이루어진 만세 행진은 이민 후손으로서 교회의 용기 있는 실천적 선구자 역할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한인 이민교회 역사는 대동정신의 이념을 바탕으로 이민역사와 함께 걸어온 동반자이었다. 오늘날의 교회는 그 수가 엄청나게 늘었다.
그러나 현 사회의 문제의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교회는 점차 퇴보해 해 가고 있는 듯해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활발한 선교사업과 사회사업에 동참하고 있으나 초기 이민교회와 비교할 때 많은 변화가 있어왔음을 인정해야 하리라 본다. 이민사회는 종교와 사회 그리고 정치적인 측면을 따로 떼어서 완전 분리를 외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 초기 이민시대의 역할처럼 한인사회의 구심점으로 다양한 협력체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기자는 생각한다.
이민교회의 역사는 한인 이민의 역사와 무게를 같이 한다. 철학의 시조를 말하면 탈레스가 떠오르듯이.
그 것에 따르는 책임감 있는 관심을 성찰해 봐야 하는 시기가 지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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