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숭목사(콘트라코스타 한인장로교회 담임)
세상과 동떨어진 멋쩍은 목사가 되기 싫어선지, 아님 원래 있는 ‘그쪽 취미’ 때문인지, 요새 뜬다는 ‘대장금’을 시청 중이다. 이야기의 3분의 2쯤 채 못 가면 장금이가 고생 끝에 의녀가 되는 내용이 나온다. 어젯밤에 본 장면인데, 실력파 장금이를 훈련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막판 ‘삼불통’(三不通)까지 몰고 가는 스승 신익필이 각고 끝에 의녀로 입궐하게 된 장금이에게 한 말이 두고두고 나의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사람이란 본질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똑똑하다는 자들은 특히 더 그렇다...... (겸손한 의술을) 네 뼈 속에 새기게 하고 네 혈관에 흐르게 하라.”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이는 장금이의 그 ‘똑소리 나는’ 영특함이 겸손과 인덕으로 담금질이 되지 않는다면 장금이도 훌륭한 의녀가 될 수 없다는 뜻이리라.
이 대목이 유난히 내 의식 속에 남는 이유는 이 가르침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세상살이’ 풍토에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 세상은 영특함이 심하게 재주를 부리는 곳이다. 똑똑한 자를 대접해주기 때문에 똑똑한 자가 되기 위한 연습을 태아 때부터 시키는 시대가 요즘시대다. 지나친 태교 풍토까지야 굳이 비난할 건 없겠지만, 겨우 서너 살 된 아이의 혀를 원어민 영어발음에 가깝게 하겠다고 돈 주고 자르는 것은, 지나치다 못해 일종의 병리현상으로까지 보인다. 글쎄 그렇게까지 미리부터 똑똑해서 어쩌겠냐는 식의 반문과 함께 말이다.
사실 이런 경우에 대해서는, 아주 일반적 정서를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우리 모두는 쉽게 공감한다. 같이 흥분하며 어쩜 그럴 수 있냐면서. 그러나 우리 자신을 잘 들여다보면 우리 각자 역시 본질에서는 그와 별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된다. 내 아이의 영특함을 위해서라면 무슨 대가라도 지불하려는 심리가 공히 있다. 그리고 그 영특함으로 다른 아이들까지 누를 수만 있다면 어떠한 현실적인 대가까지도 지불하려고 한다. 어른들 세계는 더한다. 출신과 경력으로 사람을 쉽게 재단해버린다. 거기에 좀 못 미치는 자는 가차 없이 사회 부적격자로 낙인찍어 버린다.
필자는 최근에 이런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설교나 대화 시간에). “누구에게든 장단점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장점이 곧 단점이며, 단점이 곧 장점이다.” 어떤 특정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뤄낸 조직이 있다면, 그 업적은 그 조직의 장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관리해내지 못하면, 그 장점은 곧바로 그 조직을 잡아먹는 단점이 되고 만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영특함이 재산인 사람은 영특함만으로 사람을 관계하고 세상살이를 접근하면 안 된다. 결국 그 영특함이 그를 삼킬 수 있는 것으로 둔갑하기 쉽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잠시, 만약 장금이가 스승의 선문답 식 교육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계속 자신의 지식과 영특함에만 의존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본다. 그랬더라면 아마 장금이는 드라마의 결말처럼(아직 끝나지는 않았지만 돌아가는 내용을 볼 때) 그렇게 모든 사람으로부터 총애를 받는 인물은 못 되었을 것이다.
필자는 최근에 “약함이 강함이다.”는 설교를 한 적이 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이라는 인물을 주인공 삼아서. 야곱은 세속적으로 보면 영특한 인물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경쟁논리에서 보면 아주 탁월한 비즈니스맨이다. 그러나 그 탁월성이 그를 향한 하나님의 고집(그를 고치시려는) 때문에 갖은 수모를 겪는다. 그러나 그 수모들은 역으로 야곱이 야곱 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자기 성깔과 재주로만 이 세상이 굴러가주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야곱은 결국 약해진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약함을 인정한다. ‘벧엘’(하나님의 집)이라는 곳에서.
강해지고 싶다 해서 강해진다면 누군들 안 강해지겠는가? 그러나 약해지는 것이 오히려 강한 사람을 만든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신앙세계는 더더욱 그렇고 세상살이 방식에서도 역시 이 논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강해지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신조처럼 여기고 사는 사회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민사회가 아닐까? 좀 약해져야 한다. 나의 영특함과 재주 역시 겸손과 인덕으로 담금질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불멸의 신조(강해야 산다는)가 틀린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한번쯤은 보여주는 우리의 이민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