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덕<주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슬픔에 찬 낮은 음이 한순간 높이 올라가 기다림으로 변하는 서정시 같은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를 가지고 대학교 1학년 때 소록도로 위문 공연을 갔었다. 탄식과 외로움으로 시작되는 이 곡은 청명한 바람과 달아 오르는 태양으로 소리가 말라 버린 소록도의 여름과 꼭 닮은 곡이 되었다. 배를 타고 금방 내려야 될 만큼 뭍에서 가까운 섬인데 마치 세상 끝에 있는 듯 모든 것이 다르기만 했던 소록도의 여름은 정말이지 눈부시게 아름다웠으며 영화에서 본 지중해의 여름같이 싱그럽고 바다는 숨막히게 고요했다.
해도, 구름도, 영원히 그 자리에 멈춘 듯 지독하게 적막 했고 완벽하게 깨끗이 정리 되어 있는 섬은 어느 그림보다도 아름다웠다. 집으로 들어가는 꽃 길에도 바다로 나가는 빛깔 고운 길에도 사람의 자취라곤 보이지 않고 깊은 서러움의 숨소리마저 삼켜 버려 소리도 없다.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도 다 하지 못하고 들어와 체념과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또한 그들과 함께 뼈가 묻히기를 각오하고 들어온 선교사와 의사, 그리고 간호사들. 그들의 봉사를 보며 숭고함과 인간애 넘치는 그들만의 이야기에 감동하며 나는 그곳에서 내내 아르페지오네를 켰다. 소록도를 꼭 닮은 그 곡에 아무도 함께 할 수 없고 나눌 수도 없는 소록도의 아픔을 담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아픔을 이해 하고 나누려는 겉과는 달리 나병 균이 무서워 바닷물에 들어가기가 겁났던 나의 애증까지도 아르페지오네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음악회 때 어디서 왔는지 100여명 남짓 모인 그들이 손이 없이 자기 만의 모양으로 치고 있는 박수가 미안하고 고마워 목으로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인사를 했다. 표정을 읽을 수 없이 허물어진 얼굴에 따뜻하게 젖어 있는 눈빛이 소리 없는 박수를 전해주었다.
그곳을 가 본지 30년이 되었지만 흐느끼며 시작되는 긴 저음의 탄식이 내 뱉는 듯 끊어지는 음을 타고 올라가 춤을 추며 방황하는 아르페지오네를 들으면 언제나 소록도의 여름이 생각난다. 차마 두고 떠나지 못해 중천에 멈춰 버린 해와 원망과 용서로 범벅 된 파도 소리 조차 삭혀버린 바다 그리고 그림 같은 정적 속에 들리는 소리 없는 울음들. 잊을 수 없는 숱한 고독과 고통의 날들 속에서 사랑을 되 새김질하는 그림자 같은 사람들의 긴 기다림.
내 젊은 날 음악과 함께 사랑과 꿈을 주려고 찾아 갔다가 잊혀지지 않는 그리움을 안고 온 소록도. 지금도 하늘 한가운데 눈부시게 떠오른 해를 보면 그곳이 그립다. 바다처럼 흐르는 슈베르트의 곡을 들으면 다시 한번 그곳이 가고 싶다. 그들에게 돌 던진 사람들 조차 다 포용하고 용서하며 기다리는 곳, 이 청준 씨의 소설에 그려진 당신들의 천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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