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문학박사>
옛날 어느 나라의 국왕이 사신을 외국에 보내 그 나라에 없는 물건을 사오게 했다. 사신으로 뽑힌 사람이 외국으로 가 시장을 둘러보았으나, 다 자기 나라에 있는 물건이라 살만한 물건이 없었다. 실망하여 돌아가려던 사신은 시장 구석에 빈손으로 앉아 있는 한 노인을 발견하고 이상이 여겨 그 노인에게 물었다.
물건도 팔지 않으면서, 빈손으로 이곳에 앉아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노인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이곳에서 지혜를 파는 장사를 하고 있는 중이오
노인장이 팔고 있다는 지혜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또 값은 얼마입니까?
노인은 태연히 대답했다.
나의 지혜는 오백 냥이나 한다오. 먼저 돈을 내면 지혜를 알려 주겠소.
사신은 지혜를 판다니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자기 나라에서는 본 일이 없으므로 사 가지고 돌아가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한 사신은 오백냥을 냈다. 그 노인이 알려준 지혜는 다음과 같았다.
일을 당하면 여러 번 생각하고, 되도록 화를 내지 말라. 오늘 비록 쓰지 않는다고 해도 유용할 때가 있으리라.
사신은 오백 냥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이미 거래가 이루어진 것이라 그 말을 깊이 새기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본국으로 돌아온 사신은 모든 식구들이 잠든 한밤중에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달빛에 얼핏 보니 아내의 침실 앞에 신발이 네 짝이 놓여 있었다. 자기가 없는 틈을 타서 아내가 간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사신은 화가 치밀고 분기탱천하여 당장 안으로 뛰어들어가 아내와 정부를 요절을 내려하였으나, 문득 외국에서 만난 노인이 일러준 지혜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 말을 되뇌이며 잠시 분노를 삭이고 있을 때 바깥의 인기척을 느끼고 방안에서 사람이 일어나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내 아들이 돌아온 게 아닐까?
그건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사신의 아내가 그 날 몸이 아파 어머니가 곁에서 간호를 해주다가 함께 잠든 것이었다. 사신은 밖으로 뛰어나가 펄펄 뛰며 외쳤다.
정말 싸다! 정말 싸구나!
의아하게 생각한 어머니가 물었다.
외국에 무언가 사러 간다더니, 무엇이 싸다는 말이냐?
사신은 다시 방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기뻐하며 말했다.
내 아내와 어머니는 천만 냥, 아니 그 무엇을 준다해도 바꿀 수 없는데, 단 돈 오백 냥 어치 지혜의 말로 두 분을 지키게 되었으니 이 어찌 싼 게 아니란 말입니까?
위 이야기는 불교의 『천존설아육왕비유경(天尊說阿育王譬喩經)』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법구경(法句經)』에서는 비록 사람이 백년을 살아도 최상의 지혜를 알지 못하면, 하루를 살아도 불법(佛法 : 깨달음의 가르침)을 들어 그 뜻을 아는 것만 못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사먹고, 가지고 싶은 물건도 사고, 골프를 치거나 여행을 하며 여가 생활을 즐긴다. 그러나, 정작 무엇보다 소중한 마음의 양식을 구하고, 지혜를 얻기 위한 여행에 투자하는 데는 인색한 경우가 많다.
『논어(論語)』에는 자공(子貢)이 선생님께서는 값비싼 보옥(지혜의 비유)이 있으면 간직하시겠습니까, 파시겠습니까?하고 묻자, 공자(孔子)는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제대로 값을 쳐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의 지혜를 ‘여의주(如意珠)’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게 해주는 구슬’이라는 뜻이다. 사찰은 말하자면 그런 여의주를 파는 곳이다. 여의주의 값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간절하고 정성스런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얻을 수 있다. 나는 여의주를 파는 점원으로 오늘도 제대로 값을 쳐주고 여의주를 사 갈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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