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은<간호사>
콜로라도 스프링스로 이사를 와 좋은 점은 한국 커뮤니티가 크지 않아 이곳으로 온 이주자들을 잘 챙겨 준다는 것이다. 모두들 가까운 인척들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어 가족 같은 분위기가 따스한 봄기운처럼 살갑기도하다. 그러나 한인 커뮤니티가 작은 탓일까, 일반적으로 한인회의 대표 또는 무슨 단체장, 평통위원 등등의 직함을 가지게 되면 필요 이상의 신뢰를 받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봄기운 같은 따스함에 찬물을 끼얹은 듯한 문제의 발단은 일련의 관계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한 사람에서 비롯됐다. 한인 사회는 학연과 지연에 의존해 온 악습을 태평양을 건너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이어간다. 사람을 오래 사귀어보고 관계를 발전시키며 믿고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배경과 지위를 믿는 오류에서 발생하는 문제. 그 심각성은 이곳의 계 파동에서 볼 수 있다.
L.A. 하와이, 호주로 이어졌던 한인사회의 계 파동은 드디어 이 작은 커뮤니티까지 번져왔다. 계주는 한인회에서 감투를 쓰고 오랫동안 이곳에서 자영업을 해 오던 사람이었고 그의 일가 모두도 비슷한 업종에서 종사하고 있었다. 그가 주선했던 계의 역사는 6-7년을 넘고 있었고 새 이주자들은 그의 명성만 믿고 한국에서 하던 습성대로 낙찰계를 들곤 했다. 그의 가족 모두는 이른 번호를 낙찰 시켰고, 그 후엔 가명으로 등록 된 계원의 이름으로 낙찰을 시켜 목돈을 챙긴 후, 개인재산파산 신청을 통해서 계를 공중분해 시키고는 계원들에게는 이자는커녕 본전의 한푼도 주지 않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의 계획적인 방법을 알게 된 것은 이곳에서 제일 처음 만난 이웃을 통해서였다. 한국에서 이민 온지 얼마 안 되는 그들은 영어가 좀 서툴렀고 미국 법에 어두웠다. 미국에 좀더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계주의 개인파산을 막는 법정에 나가 통역을 했고, 이 지역 지방검사에게 사연을 전하기 위한 편지를 써주며 상황을 자세히 알게되었다.
지방검사에게 사건을 이야기하며 계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적지 않은 힘이 들었으며 다른 피해자 계원들을 설득하는데도 애를 먹었다. 계원들은 대부분 자영업자들로 현금으로 곗돈을 지불해 증거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고, 세금 보고의 문제들로 그들의 수입이 공개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극히 꺼려하는 제한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형사처벌을 위한 고발을 하기 위해서는 개인 변호사를 고용해야 하는데 그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계 파동으로 입은 피해도 만만치 않은 판국에 또 다시 변호사 비용을 드려서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시간은 얼마나 들것인지, 영어도 안 되는데 일일이 법정에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과 자영업을 하다 보니 낮 시간엔 법정에 나올 시간을 낼 수 없다든지, 하는 것이 피해자들 대부분의 입장이었다.
계를 타서 개인 사업을 좀더 늘려 보거나,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겠다던 소박한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다른 주의 케이스들과는 달리 계주는 도망도 하지 않았고 버젓이 이곳에서 자영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또 다른 계들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 파렴치범이다.
보편적 도덕성이 결여 된 이민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도박과도 흡사한 계를 통해서 목돈을 마련하려는 한인 이민자들의 사고방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이어지는 계 파동은 막을 길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금융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식 계가 콜로라도 주 내에서는 적법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을 악용하는 또 다른 사람들의 무리수가 도처에 도사리고 앉아 또 다른 매서운 꽃샘 추위를 준비하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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