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목숨이 30대에 스러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갓 만38세가 된 장선호씨는 부인과 10살, 6살난 두 자녀를 둔 가장이었다. 시급히 간이식 수술이 필요한 한인 환자가 엄청난 수술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애태우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찾아가 만난 그는 갑자기 혼수상태로 쓰러져 실려 온 병원 입원실에서 연신 눈물을 흘리는 부인을 곁에 두고 힘없이 누워 있었다.
10년 전 한국에서 얻은 간경화와 합병증으로 몇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긴 뒤 가망을 찾기 위해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 왔지만 빠듯한 가정형편 때문에 건강보험도 없는 상태에서 쓰러진 그였다. 빨리 간이식만 받으면 회복될 희망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체류신분이라는 족쇄 때문에 결국 몇 십만 달러의 현찰이 없이는 수술은 커녕 가족들 중 누구의 장기가 이식 가능한 지 검사조차 허용되지 않는 현실만 확인했다고 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우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삶의 희망을 놓지 않은 채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소원은 두 가지였다.
“아이들이 언제 병원에서 나오냐며 ‘아빠를 위해 1,000번을 기도하고 있다’고 했을 때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회복되어 아이들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만이라도 뒷바라지를 할 수 있다면…”
“사정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많은 분들이 100달러, 200달러씩 도움을 주셨는데 모두들 자신들도 오히려 힘들게 사는 분들이셨어요. 웰페어로 살아가신다는 어떤 할머니가 어렵게 모은 돈을 1,000달러나 선뜻 내놓으셨을 때는 정말 피눈물이 났습니다. 건강이 회복된다면 저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봉사하면서 이 분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지요”
그러나 보험이 없어 응급가료만 한 뒤 병원 입원실에서 쫓기듯 나와야 했던 그는 며칠만에 다시 쓰러져 실려간 다른 병원에서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
그의 장례식이 치러진 지난 주, 얼굴도 모르는 분이 신문기사를 보고 찾아와 ‘병으로 고생한 가족이 있어 어려움을 안다’며 몇 천 달러의 부조금을 내놓고 가 가족들이 장례비 걱정이나마 덜 수 있었다는 소식을 뒤늦게야 전해 들었다. 수술비가 없어 삶의 끈을 잡지 못한 장선호씨와 그의 가족들에게 현실은 냉혹했지만 세상을 탓할 수만은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 종 하<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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