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두 군데의 큰 행사에 참석했다. 하나는 산호세 한미봉사회의 창립 25주년 기념식이었고 또 하나는 지난 2일 이라크 전쟁에서 유명을 달리한 고 이범록(21)상병의 추모예배 자리였다.
한미봉사회 창립 25주년 기념식에는 400여명이 넘는 인사들이 모였다. 한인은 물론 아시안 커뮤니티를 비롯해 산호세 및 산타클라라 지역의 정치, 경제, 법조, 교육계 인사들이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숫자였다.
한미봉사회가 산호세 지역에 지난 25년동안 봉사활동을 해온 노력의 산물이었다. 또한 산호세 한인 커뮤니티 센터 건립 문제로 한미봉사회가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힌 값진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인들은 대부분 주류사회 인사들에게 한인으로서 자긍심과 함께 한인 커뮤니티의 저력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인들이 아시안 커뮤니티를 넘어 미 주류사회로 곧 도약할 수 있음이 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틀 후인 6일 고 이범록 상병의 추모예배에 다녀왔다. 사실 취재차이기도 하지만 같은 한인이며 청년으로서 마땅히 참석해야 한다는 당위성마저 느꼈기 때문이다. 30분 먼저 당도한 산호세 중앙 성결 교회 주차장에는 200여명이 넘는 조문객들이 추모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문객 가운데 대부분은 이군과 누나 이효주씨의 친구 및 선후배를 비롯하여 부모인 이씨부부의 친지와 지인들로 보였다.
’이군의 전사’는 미국사회뿐만 아니라 이 지역 한인사회에는 너무나도 큰 사건이다.
옆집에 사는 친구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격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많은 한인 1.5세와 2세들이 이라크전에 참전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지 강건너 불구경이 아닌 우리들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이군의 추모예배에서는 단지 2-3명의 지역 단체 인사만 만날 수 있었을 뿐 이틀 전 느꼈던 한인 커뮤니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베이지역 도시 가운데 압도적인 한인 인구를 자랑하는 산호세 지역에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스포츠, 종교, 친목을 목적으로 한 한인 단체들도 많이 있다. 이라크 개전이후 일부에서 이라크전 참전 반대의 기치를 높일 때 이라크전의 찬반을 떠나 우리 자녀들이 전쟁에 참가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한인 모두가 가슴 졸이고 그들의 안전을 기원했었다. 그러나 이들 자녀중 하나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지만 한인단체 인사들은 모두 그를 외면한 것이다.
산호세 한미봉사회 만찬과 달리 추모예배에 한인 커뮤니티를 볼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산호세에 한인회가 없기 때문일까?’, ‘이틀 전 지역 한인 커뮤니티의 단합을 위해 힘쓰자던 그 많던 한인 커뮤니티 인사들은 어디에 있었을까’라고 자문해보기도 했으나 답을 얻지는 못했다.
본국에서는 현충일이 끼어 있던 지난 주말은 불과 이틀 전에 느꼈던 한인 커뮤니티에 대한 느낌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결혼식에는 못 가도 장례식에는 참석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북가주에 사는 한인, 특히 산호세 지역의 한인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날 취재를 마치고 ‘실리콘 밸리에 과연 한인 커뮤니티는 존재하는가’라는 풀리지 않는 의문을 뒤로 한 채 씁쓸하게 교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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