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준호 목사(헌츠빌침례교회)
예전에는 연대순으로 일어났던 사건을 암기하며 역사공부를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언제 어디서 무슨 사건이 있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왜 사건이 일어났는가를 질문하고 답하는데 더 중점을 두며 역사를 연구한다.
이렇게 왜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추며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으로 변화하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 역사를 움직인 큰 사건을 역사 연구의 대상으로 삼던 것에 비하여 이제는 작은 사건 하나라도 역사 연구의 소중한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왜냐하면 작은 사건에도 큰 사건과 같은 진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역사 속에 있는 진리를 깨닫는 것을 학문한다고 이야기를 한다면 그 진리를 살아 있는 인격으로 여겨 나와 관계를 맺는 것을 신앙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래서 아직 역사 연구라는 학문이 정립되기 전에 기록되고 형성된 성경 속에는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진리를 나타내기 위하여 다양한 사건들을 말씀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역사적인 말씀 가운데서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와 교제하기를 원한다.
뿐만 아니라 이 진리를 우리들의 삶에 적용시키어 세상을 하나님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할 주체가 되는 교회이고 신앙인들이 되기를 원한다.
이러한 역사 속의 진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미 알고 공감하고 있는 상식으로 이미 나타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상식이 모두 진리라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상식은 한계성을 가진 인간들이 이해하고 경험하며 형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완성된 것이라 하여 상식을 모두 무시하는 것은 신앙인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 상식에 녹아있는 진리와 상식 이상에 있는 진리를 모두 발견하고 교제하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이다. 그래서 상식을 기초로 하며 상식 이상의 진리 가운데서 우리가 살면 그 가운데는 진리의 신비한 힘이 작용하기 시작을 한다.
예를 들면 모든 사람이 모두 공평하게 대우받으면서 질서가 있는 곳에서는 우리들의 마음이 평화로와 진다. 그리고 이 평화로운 마음이 된 상태에서 바로 보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난다.
나에게 주어진 은사도 분명하게 발견할 수가 있다. 그리고 내가 서야할 위치를 바로 알아 바른 길을 가며 바른 선택과 결정을 할 수도 있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흩어져 있는 참과 거짓도 분별하게 된다. 더욱이 일반 사회에서 볼 수 없던 아름답고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는 동안 상처받은 마음들이 치료되고 용기도 얻고 사랑하는 마음도 생겨지게 된다.
또한 민족이든지, 민주이든지, 사람이든지, 진리이든지 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희생하는 모습을 보는 동안 함께 희생에 동참하고픈 마음을 끄는 신비로운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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