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 목사(뉴저지 베데스다교회)
사람에게 영(spirit)이 있다는 것은 자기 초월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자기 자신의 현재의 시간과 위치를 넘어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사람은 지금 현재의 시간을 살면서 과거의 시간 속으로 찾아가거나 장차 있을 죽음을 미리 바라볼 수 있다.
신앙을 갖게 된 동기로서, 어떤 사람들은 죽음과 심판을 미리 생각하면서 놀람과 두려운 마음으로 피난처를 찾다가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경우가 있다. 필자의 경우도 중학교 때 죽음을 생각하면서 고민하다가 스스로 교회를 찾아갔고, 기독교 신앙 안에서 그 공포감과 허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집에서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생활이 계속되면서 마음에 평안을 찾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보람된 일인가? 생각하다가 목회의 길로 가게 되었다.
창세기에서 보는 바, 범죄한 인간에게 죽음이 선고되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9) 여기 ‘흙’이란 ‘먼지’를 의미하는 말이다. ‘먼지’에서 와서 ‘먼지’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 언젠가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다. 그래서 인생이란 없는 것 같고, 사람이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모두가 허사뿐이고,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닌다(시39:5-6)고 말한다. 무릇 사람이라면,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한 교우의 최후를 몇 달에 걸쳐 지켜보게 되었다. 아직도 열심히 살 나이에 갑자기 발견된 간의 질환으로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건강을 다시 찾으면.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 보려고 다짐도 하고, 간구도 했지만 끝내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본인의 유해는 화장을 통해 작은 상자에 담겨 서울로 돌아갔다.
아직도 병원 안에서 대했던 고인의 모습이 생생하다. 고인은 떠나갔지만,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남은 영상을 통해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 같다.앞서 가는 분들은 사람이 죽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몸으로 말한다. 우리의 형제, 자매가 먼저 떠나면서 우리의 가는 길을 먼저 보여준다. 종종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
또한 그들은 떠나가는 시간, 이 땅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삶을 보람있게 만들고, 후회 없이 사는 것인지, 그들의 소원과 기도를 통해 말해 준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살고, 이웃 에 선을 베풀며 사는 것이라 한다.
무엇을 깨닫는 본체는 항상 ‘적절한 시간 속에서’ 가치를 갖는다. 뒤늦게 아는 지식은 실로 가치가 없을 때가 있다. 옛날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서 불현듯 답이 생각났을 때의 씁쓰레한 기분. 우리는 장차 하나님을 대면하는 그 시간을 향해 부단히 움직이고 있다.
장차 예수님이 우리 눈을 들여다보는 그 순간을 어떻게 맞아야 하는가? 신앙생활은 그 때를 의식하고 준비하고 사는 삶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주변의 성도들이 마지막 남기는 소원과 기도 속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답이 있는 듯 싶다. 주님을 위한 일과 이웃 속에 선을 베푸는 삶에 힘쓰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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