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서 무사 귀환한 마크 이 하사
2003년 5월1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주요 전투는 끝났다고 이라크전 종전선언을 했다. 그러나 진정한 전쟁은 그때부터였다.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운 미·영 연합군의 ‘공포와 전율’ 작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이라크 저항세력은 오히려 부시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긋지긋한 게릴라전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전투다운 전투 한번 없이 끝난 듯했던 이라크전이 참혹한 살육전으로 변해가던 바로 그때, 베이지역 한인의 아들 마크 이(30·산브루노·사진)씨는 미 육군 341헌병대 하사계급장을 달고 살육의 현장으로 급파됐다.
그로부터 꼬박 1년. 이라크 남부요충 나시리야에서 6개월, 다시 바그다드 북쪽 발라드에서 6개월동안 ‘오늘밤 눈을 붙이면서 내일아침 다시 눈을 뜬다는 기약도 없는’ 생사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던 이 하사는 지난달 11일 미 본토로 귀환, 18일 가족의 품에 안겼다.
사실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돌아온다는 걸 믿을 수 없었습니다. 워싱턴주 기지에 도착해서도 우리 대원들은 언제 또다시 (이라크로) 불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틀동안 무장을 풀지 않고 지냈을 정도입니다.
그럴 만도 했다. 341헌병대의 이라크행은 당초 6개월 예정이었다. 그러나 나시리야 주둔 6개월이 끝나 귀환의 꿈에 들떠 있던 대원들에게 떨어진 명령은 무기한 복무연장과 발라드 이동. 그 뒤로도 2차례나 복무기간이 연장됐기 때문에 이 하사를 비롯한 대원들은 미국땅을 밟고도 선뜻 다리를 뻗고 잠을 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틀이 지나 산호세로 이동해 비로소 해산된다는 최종명령을 확인한 뒤에야 그는 산브루노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무사귀환 보고를 드렸다.
29일 인터뷰에서 자신의 깜짝귀환이 아마 아버지의 날(6월20일) 큰 선물이 됐을 것이라고 말하며 너털 웃던 그는 화제가 ‘이라크 13개월’로 옮아가자 만감이 교차한 듯 말이 자주 끊겼다.
한낮이면 152도까지 올라가고 밤에도 100도를 넘나드는 땡볕더위 속에서 물이 귀해 하루 3리터만 배급받고, 그래도 만일에 대비해 완전군장을 한 채 잠을 자야 하고…나시리야에서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습니다. 발라드로 옮긴 뒤로는 거의 매일 바그다드를 드나들어야 했고…순찰을 돌다 폭발물이 터져 죽을 뻔한 것만 해도 6번은 될 겁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떼지어 몰려들어 구걸하는 아이들, 차에 치여 죽어 널브러진 아이들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한국인 회사원 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세력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되고 이에 따라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문제가 쟁점으로 등장한 것에 대해서는 그는 단호한 입장을 피력했다.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그들(무장세력)은 그런 파병 찬반논란 등 혼란 자체를 노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파병을 철회한다면 테러리스트들의 승리가 될 것입니다.
이보문(69)씨와 이영희(61)씨의 아들로 ‘예비역’으로 되돌아온 이씨는 샌프란시스코 로웰고를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스테이트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예비경찰관(SFPD 채용시험 합격하고 발령대기 중)이기도하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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