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모 목사(뉴욕한국인교회)
세상 나라가 선한 한, 그것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이 땅의 생은 하나님의 현존에서 살게 되는 그런 생을 위한 준비요, 인간의 하나님 주권과의 관계는 교회를 통해 중재된다고 주장한다.
종교개혁 후 개신교는 카톨릭의 이런 일률적인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동일화’ 사상을 배격한다. 중세 로마 교회의 타락은 종교개혁자들만이 아니
라 중세 여러 나라, 여러 종족들은 물론 기독교 신자들에게도 로마 카톨릭 교회가 하나님 나라일 수 없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교회’가 그 관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의 아주 조심스런 대목에 직면했다. 오늘의 성서학자들은 교회의 중심성(The Centrality of the Church)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선교에 있다고 인정한다. 이런 교회를 떠난 그리스도인은 생각할 수 없다.
오순절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면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형성됐다. 그들은 어떤 나라나 종족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한 주로 고백하는 자들은, 함께 사랑하고 예배하며 섬기고 증거하며 친교하는 한 공동체의 교회 교인들이 된 것이다. 신약의 교회는 하나의 정적인 사회(A Static Society)는 아니다.
그의 본질적인 성격은 주의 생과 공동체의 생이 하나되는데 있다. 그러나 그 본질적인 기능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온 세상에 가져오는 것이다. 그 관계를 요한복음은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비유로 잘 묘사했다.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요 교인들은 가지들이다. 바울은 몸과 지체의 관계로 비유하기도 한다. 예수는 몸의 머리요 교회의 회원들은 그 몸의 지체들이다. 공동체의 그리스도와의 이런 일치와 연대성(unity and solidarity)은 그저 정적인 관계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교회의 활동과 선교에 비유했다. 포도나무도 몸도 살아 성장하고 활동하듯, 교회도 그래야 참 교회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선교와 목적을 이루어 간다.
이스라엘의 유대교나 로마의 카톨릭 교회 등과 같이,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가르침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크고 자신을 위할 뿐일 때, 하나님은 그의 등을 옮기고 더 이상 하나님 나라의 소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기구나 공동체로 전락할 수 있다. 종교개혁 이후에도 계속 새로운 교회가 생기며 장로교, 루터교, 감리교, 그리스도교회 등의 교단들이 형성되고 여러 건전한 교단들이 함께 에큐메니칼의 교회연합 선교운동을 펼쳐가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 될 수 있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그의 하나님 나라 가르침과 사명을 언제나 얼마나 바로 수행하고 있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바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계속 자문하며 회개하고 변하여 새롭게 되는 신앙공동체 형성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고난의 세계와 고통받는 민중들을 외면하고 구별하여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세계와 민중들과 공동 연대감을 형성하며 그 구원과 새롭게 됨을 위해 함께 펼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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