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문학박사>
사는 게 무엇입니까?
아니, 지금 질문하시는 분은 살지 않고 죽었습니까?
며칠 전 <도(道)와 생사(生死)>라는 주제로 『논어(論語)』강의를 하던 중 한 참석자의 질문에 위와 같이 대답을 했다. 그 날 강의에서 아침에 도를 들어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는 구절과, 제자의 죽음에 대한 물음에, 아직 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느냐(未知生 焉知死)?는 공자의 말을 중심으로 생사와 관련된 논어의 구절들이 검토되었다. 그러나, 어느 구절에서도 삶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를 내린 곳은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전을 읽고 강의를 들으면서도 제대로 감이 잡히지 않아 답답한 모양이다. 사람들은 사는 게 무엇인지, 죽는 게 무엇인지, 또 생사에 끄달리지도 않으면서 생사를 낳기도 한다는 도(道)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 정답을 분명하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도를 말하면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라(道可道非常道)는 노자 『도덕경(道德經)』의 첫머리를 인용하며 그러한 문제에는 답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굳이 변명(?)하지 않더라도, 누가 감히 어떻게 도가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삶이란 무엇인가? 란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하기가 어려운 것은 삶의 실체가 무엇인지 몰라서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삶의 실체 자체가 명확하게 규정될 수 있는 어떤 고정된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즉 삶이란 개념 규정할 수 있는 어떤 명사형이 아니라, 산다는 동사의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지금 질문하시는 분은 살지 않고 죽었느냐?고 답할 수 밖에 없었다. 사는 게 무엇입니까?하고 질문하고 있는 질문의 주체와 그가 질문하고 대답을 듣고 있는 ‘지금 & 여기’의 현장을 떠나 어디에 삶이 따로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사는 게 이런 게 아니라는 넋두리를 하는 것을 본다. 고국을 떠나 이민을 온 동포들은 더욱 그러한 것 같다. 과거를 얘기할 때면 다들 한국에 있을 때는 소위 잘나갔다는 얘기를 해대며 현재의 신세를 한탄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못다 이룬 꿈과 미련을 자식들에게 전가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복권이 당첨되기를 기다리듯이 실체도 없는 막연한 환상을 가지기도 하면서, 여전히 알 수 없는 미래의 삶을 불안해한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마음을 못 잡고 심지어는 사주팔자를 알아본다는 둥하면서 점을 치기도 하고 역술가들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다들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의 추억과 미래의 환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으로/ 비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으 음음 어허허~/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 짚는 인생살이/ 한 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아 하하하, 으 하하하~>
김국환 씨가 부른 ‘타타타’라는 노래다. 지나간 과거에 집착할 것이 어디 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을 건졌다’는 데, ‘옷 한 벌’이란 무엇인가? 바로 우리의 알몸 자체가 우리가 건진 옷 한 벌이 아닐까? 집착과 애욕, 고통과 쾌락이 있는 것은 바로 그 몸이 있기 때문이다. 몸이 이 세상에 있기에 따르는 온갖 걱정거리, 그것이 우리 삶의 덤이요, 재미라고 노래지 않는가. 사는 게 뭔지? 하고 신세한탄 하고 있는 ‘지금 여기’의 자신의 모습, 그것이 바로 자신의 참 삶이자, 덤이며 재미이다. 어디서 따로 참 삶과 재미를 찾는가. 그 자리를 돌아보면 그만인 것을. 할(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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