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선 <본보 편집위원>
한국사람들 만큼 정치에 관심이 많은 민족도 많지 않다고 한다. 본국이야 그렇다 치고 미주 한인들의 한국 정치에 대한 열정을 보면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정치적 성향이 미국 정가에서도 통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미국정치에 대한 한인사회의 관심은 늘 냉랭하기 짝이 없다. 독자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몇몇 뜻 있는 사람들이 없지 않으나 한인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라리 무관심에 가깝다.
미국에 이민 와 시민권자로 살면서 미국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다인종 국가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소수계 입장이라면 후손들을 위해 기를 써서라도 주류사회에서 정치적 입지를 구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주요한 정치적 선거 때 한인들이 조직적으로 어떤 후보를 지원한다거나 하는 말은 거의 듣지 못한다. 한국의 대통령선거 때 시키지 않아도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후원회들을 생각하면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에서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오는 11월에 있을 대선의 열기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주류사회는 물론 각 소수계 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보다 많은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물밑 작업이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자금을 모아 전달하고, 선거캠프에 직접 참여하며, 후원 조직을 운영하기도 한다.
한인사회는 어떤가. 눈 씻고 찾아봐도 그런 소식은 극히 드물다. 그 많은 한인단체들은 다 어디에 갔는지 이럴 때는 너무 조용하기만 하다.
복지, 신분 등 제반 문제에 있어 보이지 않게 많은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 한인사회 현실이다. 이는 정치참여에 대한 한국계 이민자들의 노력이 라틴계 등 다른 소수계보다 훨씬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유가 됐든 그건 ‘권리 위에 잠자는’ 것과 다름이 없다. 미국사회는 그런 사람에 대한 구제에 극히 소극적이다. 본인들도 가만히 있는데 무엇 때문에 타민족들이 나서겠는가.
이 상태로는 지금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케리 민주당 후보가 부시를 꺾고 백악관에 입성한다고 해도 한인들이 자력으로 얻을 ‘파이’는 없을 것이다. 부시가 수성에 성공해 백악관을 지킨다고 해도 ‘코리안’에 대한 관심은 더욱 멀어지기만 할 것이다.
무작정 싫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다. 미국정치에 대한 관심이 무관심보다 관념적으로 우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소수계 이민자로 미국 땅에서 무시당하지 않고 살려면 우리의 정치적 입지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기왕 미국에 이민 와 살고 있고, 2세 3세 자자손손 살아야 할 나라라면 한인들의 입지는 한인들이 찾아야하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서는 한인들의 투표율이 높아져야 한다. 18세 이상 한국계 투표권자중 겨우 34%정도만 유권자등록을 하고 있고, 그 중 30%도 안 되는 사람들만 실제 투표소에 나간다고 한다. 유태계가 90% 등록에 90%의 투표율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멀어도 너무 멀다. 미국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재력과 조직을 가지고 있는 그들인데 무엇이 아쉬워 그런 참여율을 보이겠는가.
투표뿐만 아니다. 가급적 한인들을 정계나 관계로 많이 보내야 한다. 언어나 문화 문제로 한인 1세들이 그 일을 직접 실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어 잘하고 미국 문화에 익숙한 1.5세, 2세, 3세들이 있지 않은가. 1세들이 자금과 조직으로 그들을 후원하면 그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남 잘되는 것 못 보는 마음이 문제지 돈이나 조직이 없어 안 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모두 한마음으로 그것을 해내는 소수계는 자신들의 권익을 찾고, 그렇지 못하면 차별과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선택은 그 민족의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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