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명<엔지니어>
’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나 차가운 손/ 가슴 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하얀 종이 위에/ 곱게 써 내려간/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
뻥 뚫린 내 가슴에/ 서러움의 물 흐를 때/떠나 가버린/ 너에게/ 사랑 노래 보낸다// ‘
어니언스가 통기타 치며 부른 ‘편지’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그 시절 이 노래를 들으면서 괜히 서러움에 젖어 소주잔을 기울이고 그 누구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냥 부쳐지지 않을 사랑의 편지도 한번 써보곤 했다.
시간이 되면 집 앞을 서성거리다 멀리 가방을 메고 걸어오는 우체부를 바라보며 오늘은 혹시 그 사람에게서 편지가 올려나 잔뜩 기대를 갖고 기다리다 막상 우체부가 다가오면 안 그랬다는 듯 돌아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며 나를 부르겠지 기다려보곤 했다. 한 뭉치 받아든 편지를 얼른 넘겨보다 눈에 띄는 낯익은 이름에 가슴을 설레고 책상에 고스란히 편지를 올려놓고 한참을 응시하다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을 거두듯 아주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겉봉을 열고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 한번 한 뒤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짜릿한 설렘이 좋았다. 그런 조마조마한 기다림이 좋았다. 온 밤을 새우며 읽고 또 읽어도 가슴에 새록새록 돋아나는 그리움이 좋았다. 하얀 백지에 채우고 또 채워도 끊임없이 넘치는 순수하고 맑은 사랑이 좋았다. 휘영청 스러지는 정다운 달빛에 깊어 가는 밤의 그림자가 아늑하고 포근해서 좋았다.
그리고 지금 컴퓨터가 웬만한 것은 다 해결해 주는 환경 속에서 적어도 2-3일은 걸리는 편지는 너무 느려 전자메일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더 나아가 채팅으로 실시간 대화를 나눈다. 깊은 밤을 새우며 하얀 백지 위에 그려 가며 적어가던 그 시절의 깨알같이 많았던 사연들은 이미 떼구르르 굴러 떨어져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버렸다.
요즘은 퇴근해서 우편함을 열러보기가 두렵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우편물들 대부분의 것들이 광고물이고 아니면 언제까지 돈을 내라는 청구서들이다. 때문에 아예 뜯어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기 일수이다. 예전에 그렇게 낭만적으로 느껴지던 편지들이 이제는 오히려 쓰레기처럼 여겨져 부담으로 다가오는 현실이 너무나 슬프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받아든 한 통의 편지는 나를 너무나도 흥분되게 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날라든 핑크빛 편지를 받아들고 떨리는 두 손을 간신히 다잡으며 당신의 마음을 먼저 느껴본 뒤 조심스레 읽어 내려갔다. 항상 같이 살아오면서 미쳐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의 감정들이 아담하니 하얀 백지 위에 올려져 있었다. 콧등이 시큼해지며 심장의 박동이 너무나 거세어 막 터져 버릴 듯한 전율에 휩싸여 이미 내 몸은 창공을 나는 구름이 되어 있었다. 그 동안 잊고 살아왔던 마음속 진실과 사랑을 바로 편지를 통하여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장문의 글은 아닐지라도 10분의 투자로 내 마음속 사랑을 전할 수 있다면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어 우리 가슴에 새기어지는 짧은 편지라도 써보자. 편지를 읽는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쓰는 우리는 더욱 행복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아, 별빛이 초롱 빛나는 밤에 백지 하나 꺼내어 둘만의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어 보자. 사랑이라는 이름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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