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사진관>
여보, 아무리 봐도 미국 추석 달은 한국 추석달만 못해요
그게 무슨 말이요?
여기서 보는 달이 아무래도 작아 보인다구요
어이구 문학소녀 탄생하셨네, 한줄기 쓰실려구? 그 달이 그 달이지 작기는 무슨?
한국 추석달은 쟁반만 했는데 여기 달은 작은 접시 만하잖아요?
옛날부터 보는 사람에 따라 멍석 만한 달이라는 사람이 있나하면 간장 종지 만하다는 사람도 있으니 그건 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되어 있으니 당신 말도 가히 틀리는 말은 아닐거요
나도 조국을 떠난 후 서른 여덟 번째 맞는 추석이지만 몇 번이나 토란국과 송편을 먹었던지 기억이 아삼삼하다. [민족의 대 이동]이라는 어마어마한 귀성행렬이 어김없이 매년 찾아오는 조국의 한가위 기분이 몇 안 되는 식구들끼리 오순도순 모이는 이곳의 기분과 비교가 되랴마는 노인들 모시고 사는 가족들은 아직도 차례를 지내고 조상들의 얼을 기린다. 가끔은 교회다니는 며느리와 절에 다니는 시어머니가 제사 때문에 피곤한 대면을 하는 일들을 종종 보지만 조상을 우상으로 몰아 대는 신교의 가르침도 조금은 부드러운 방향전환이 필요하지 않나싶다.하느님도 부모에 효도하는 사람을 결코 미워하지 않으실텐데 말이다.
이곳도 명절이면 약간의 들뜬 마음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팔월한가위가 해가 갈수록 추수감사절에 자리를 빼앗게 가는 듯 한 느낌은 어쩐지 서글퍼지고 만다. 기왕에 미국 땅에 발붙이고 오래 살아왔으니 미국추석을 즐기면 어떠랴하는게 대부분 교민들의 생각인 것 같다. 한국 추석이야 주말에 끼어 있으면 다행이지만 아니면 일 다니는 주중에 모여 앉아 한잔 즐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니 공휴일로 정해진 미국추석을 우리의 추석으로 삼는 것도 가히 잘못된 생각이 아니리라.
조국엔 명절만 오면 주부들의 신경들이 곤두서서 명절 병들이 생긴다던데 여기는 어떤지 모르겠다. 여자들은 며칠 전부터 음식준비에 명절을 즐기기는커녕 미리부터 두려움에 병이 생긴다는데 남정네들은 지겨운 화투판에 아직도 정신들을 못 차리는 모양이다. 그래서 여자들 일을 거들어 주는 몇몇 사나이들이 천연기념물이나 국보급 취급을 받으며 매스컴을 탄다. 미국에서야 조금 많은 식구들이 모일 때면 남자들도 팔 걷어 부치고 잘들 도와주지만 아직도 이조시대로 착각을 하거나 진시황처럼 폭군으로 군림하는 남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서글픈 일이다.
요즘이야 조국에도 많은 사람들이 맞벌이 부부라지만 여기는 처음부터 맞벌이로 시작한 이민생활들이고 보니 화투짝이나 돌리며 앉아서 삼시세때를 받아먹기엔 여간 얼굴이 두껍지 않고야 할 수가 없겠다. 송편에 토란국이 터키로 바뀌더라도 아이들이 추석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고 자라도록 젊은 부모들은 신경을 써야겠다.
그리 모여서 먹고 노는게 다 인주로만 알며 아이들이 자란다면 추석이 추수감사절로 대체되는 것보다 훨씬 가슴 아픈 일이 되겠다. 아무리 미국생활이 바빠도 미국에서 낳고 자란 2세나 3세들에게 조상과 뿌리는 알려주어야 하는 게 추석을 지내는 부모들의 할 일이다. 조상도 뿌리도 모르고 그냥 섞여 살아갈 자손들을 생각해 보시라. 긍지없이 살아가는 그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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