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의 주말나기
‘색종이 접는 모녀’ 오윤희씨와 딸 은정양
“난 너를 알고 사랑을 알고, 종이학 슬픈 꿈을 알게 되었네. 어느 날 나의 손에 주었던 키 작은 종이학 한 마리. 천 번을 접어야만 학이 되는 사연을 나에게 전해주며 울먹이던 너. 못다 했던 우리들의 사랑노래가 외로운 이 밤도 저 하늘 별 되어 아픈 내 가슴에 맺히네.” 8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전영록의 노래 ‘종이학’의 가사다. 종이학 노래가 가요 차트에 머물면서 색종이로 종이학을 접는 여학생 숫자도 늘어갔다.
오윤희(39, 주부)씨 역시 단발머리 나풀거리던 소녀 시절 종이학 천 마리를 접었던 추억을 안고 있다. 밤낮으로 정성을 다해 접었던 천 마리의 학은 남몰래 흠모하던 교생 선생님에게 선물했다.
단발머리와 무채색 교복으로 가슴 속 끼를 꼭꼭 감추고 살아야만 했던 그 시절, 내부에서 활활 타오르던 정열은 천 마리 종이학을 접는 것으로 표출됐던 게 아니었을까.
이제 시집와 아들 딸 낳고 살면서도 그녀는 꿈 많던 시절의 감성을 고스란히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 아직도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괜시리 가슴이 설레고, 지는 해를 바라볼 때면 가슴이 알싸해져 온다. 삶이란 어차피 눈 뜨고 꾸는 꿈. 그래서 이처럼 철딱서니 없는 자신이 그리 밉지만은 않다.
변변한 장난감이란 게 거의 없던 시절, 어머니는 색종이를 접어 종이배와 종이학을 만들어 그녀의 손에 올려주셨다. 2차원의 평면이었던 색종이들이 어머니의 손 안에서 3차원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녀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어머니는 마법사였다. 그렇게 만들었던 종이배는 소망을 실어 냇물에 띄었었고 하늘에 종이비행기를 날리면서 넓은 세계로 향하고 싶은 바람도 함께 보냈다.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 어린 시절 눈을 반짝이며 지켜봤던 색종이 접기를 다시 삶 속에 들여놓을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꼭 자신의 분신을 보는 것 같은 딸 은정(11) 양은 생김새도 취미도 그녀를 꼭 닮았다. 심심하다고 느낄 때면 은정은 색종이 박스를 그녀 앞에 가져온다. 딸의 지능과 정서 발달을 위해 시작했지만 남편과 아들이 더 좋아하는 바람에 이제 색종이 접기는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여흥이 되었다.
종이배와 종이학 정도는 아마 당신도 접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녀가 색종이로 접을 수 있는 것들은 줄잡아 20가지 정도. 배, 비행기, 모자, 저고리, 바지, 공, 바구니, 꽃바구니, 의자, 피아노, 튜울립, 백합, 학, 새, 거북이, 고양이, 강아지, 펭귄, 기린, 코끼리, 사슴, 산타클로스, 별 등이다. 가장 쉬운 것은 종이배, 가장 어려운 것은 거북이란다.
우선 색종이의 반을 접고 또 4등분이 되도록 접은 후에 약 15번 정도 이리저리 접다 보면 만들고자 했던 형태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요즘은 종이를 다 접은 후에는 그 형태에 가장 알맞은 색이 프린트되어 있는 색종이를 선물의 집에서 판매하고 있어 이용하기 편하다. 은정이가 앞으로 천 마리의 학을 접어 선물하게 될 대상은 과연 누구일까 궁금해진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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