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문학박사>
동서양의 경전과 고전들을 읽다보면 흔히 그 내용이 너무나 바르고 당연하면서도 평범하고 단순하기 때문에, 또 식상하리 만치 여러 곳에서 자주 반복이 되는 탓에 오히려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고 쉽게 지나치게 되는 구절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구절일수록 머리로 이해하기는 쉽지만, 막상 실제 삶에서 실행할라치면 힘든 내용들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남의 허물을 지적하기보다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라는 가르침이 아닌가 한다.
기독교 성경에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를 본다는 말이나, 『논어(論語)』의 군자는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는 경전의 말에서부터, 오십보 백보니, 뭐 묻은 개가 물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등과 같은 고사성어와 속담에 이르기까지 그런 가르침을 역설적으로 담고있는 말들을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도 매우 자주 접한다.
고전을 강의하느라 남들 앞에서는 늘 이런 구절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도 세상에서 일이 생겨 남들과 부딪치다 보면 어느새 나 자신이 바로 그런 인간이 되고 있음을 알고 몸둘 바를 모르게 된다.
최근에도 어떤 모임에서 한 사람을 두고, 한편에서는 집단으로 성토를 하고 또 한 편에서는 옹호를 하느라 편을 갈라 서로 인신공격에 가까운 말들을 하며 핏대를 올리는 일이 있었다. 어쩌면 사소할 수도 있는 일에 왜 다들 마치 사생결단이라도 하듯 목청을 높이고 삿대질을 해대는지 그냥 모두가 서글퍼 보였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약점과 흉허물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으며, 일을 하다보면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굳이 작정을 하고 걸고넘어지면 걸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고 털어서 먼지 나지 않을 사람이 없다. 남의 약점을 지적하며 핏대를 올리는 사람일수록 더 허물이 많은 경우가 많다.
그날 모임에서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다른 사람을 성토하는 말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기 허물이 더 많아 보이는데, 당사자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는 듯 했다. 세속적 이해관계를 위해서 모인 단체가 아니라 봉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단체이기에 서글픔은 더했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남의 죄를 밝히고자 하는 사람은 다섯 가지를 알아야 한다. 그 죄가 거짓이 아니고 사실이어야 하며, 그 때가 적절해야 하며, 법도를 어기지 않고 보탬이 되는 것이어야 하며, 거칠거나 험하지 않고 부드러워야 하며, 미움에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들추어야 한다. 이러한 다섯 가지를 갖추면 남의 죄를 밝힐 수 있다.
이런 가르침대로 남의 죄를 밝힐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대개의 경우 남의 죄를 밝히려하면 그를 미워하고 헐뜯는 마음이 앞서고, 남의 허물을 비난하며 시비를 따지는 경우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 시비를 따지기가 십상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는 와서 시비를 이야기하는 자가 곧 시비하는 사람이다(來說是非者 便是是非人)고 했다. 필자도 이렇게 며칠전의 모임에서 있었던 일을 가져와 시비(是非)를 논하고 있으니 곧 바로 시비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고전에 나오는 옛 성현들의 말씀은 고리타분한 것 같지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들의 어리석고 간사한 분별심을 이미 간파해 내고 있다. 실로 스스로 경책하는 마음으로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되뇌이며 오늘 시비한 필자의 허물에 갈음하고자 하지만, 이 또한 시비를 벗어나지는 못하리라.
함부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언젠가는 반드시 나에게로 되돌아와 나를 손상시킬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소리를 듣거든 마치 나의 부모를 헐뜯는 것처럼 여기라. 오늘 아침엔 비록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했지만 내일엔 반드시 나의 허물을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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