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헬렌<여성의 창>
부드러운 안개에 보듬 긴 늦가을 해 덩어리를 바다 물결이 어루만지고 주홍색 속살의 석양이 피워 올리는 산타크루즈 바다와 맞부딪치며 천천히 익어가는 풍경 사이길 아래, 보금자리 둥지를 틀고 자기의 고향 집 인양 애벌의 서식부터 껍질을 벗어 던지고 호랑나비가 되어 50미터 나무 숲 위를 훨훨 나르며 세상에 사는 모든 나비들의 제왕처럼 군림하는 겨울나비를 찾아서…
Monarch Besting Butterfly 는 오렌지 색과 검정 색을 한 가장 큰 나비로 50 degree 이상에서만 날며, 먹지 않고 1000리 길을 날아간다고 한다. 서식 장소도 일정한 곳을 찾아 서식하며 10월부터 3월까지 산타크루즈 이곳에서 살다 2월부터 9월까지 콜로라도로 옮겨 날아간다. 알은 15일에서 20일 사이 애벌레로 되며 길이는 2인치다.
나비 박사 석주형은 20년 동안 75만 마리의 나비를 채집하고 100여 편이 넘는 나비 관련 논문을 썼다. 작은 나라 섬 중학교 선생님이 세계 50명의 세계나비학회에 회원이 되어 정상의 학자가 되었다.
석주형은 1926년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가고시마고등 농림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 학창시절 비가 몹시 내리는 어느 날 곤충채집을 하기로 야외 수업을 계획하였다. 비가 오는 날이라 비 때문에 취소를 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곤충 채집을 해 오라 했다. 학생들은 비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했지만 석주형은 열심히 찾아 다녔으나 비 때문에 곤충이 다 숨어 버려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 후에 학생들은 하나 둘씩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얼마 후에 비에 흠뻑 젖은 석주형은 묵묵히 곱게 접은 종이를 펼쳐 보였다. 그 속에는 날파리가 들어 있었다. 남들은 하찮게 여기는 날파리를 잡아 온 것이다. 그로 인해 훗날 많은 학자들이 송도로 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논문 한 줄을 쓰기 위해 나비 3만 마리를 관찰했다. 또 지리산에서 처음 보는 나비를 발견하고 4 시간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쫓아다닌 끝에 채집하고 ‘지리산 팔랑나비’라는 우리말 이름을 붙였다.
가장 아름다운 곤충은 나비라고 말했던 석주형 그는 42년이란 짧은 생애 동안 학생 시절 빗속에서 날파리를 잡았던 것처럼 묵묵히 발로써 연구하며 세계에 그 업적을 남겼다.
처음 보는 나비를 필자도 ‘호랑나비’라고 이름 붙여 주고 싶었다.
멍청히 하늘 가까이 떠도는 나비를 바라보면서 같이 온 일행은 목 베개를 갖고 와야겠다는 농담을 나누며, 홍시 감처럼 달콤하게 익어가는 가을 바다의 풍경과 멋지게 휘젓고 공중 곡예를 즐기는 호랑나비를 바다에 보자기를 평평하게 잡아당겨 화폭 가득 나비 그림을 그려 마음 벽에 걸어 놓았다.
돌아 오는 길에 한때 유행했던 김흥국의 호랑나비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호랑나비 한 마리가/ 꽃 밭에 앉았는데/ 도대체 한 사람도 즐겨 찾는 이 하나 없네/ 호랑나비야 날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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