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경일<무용가>
머리, 하늘, 돈, 가루약, 색칠공부, 부모님, 백조, 자물쇠, 열매, 알, 음료수, 불, 소금, 나무, 치약, 메모리, 삶.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모든 단어는 결국 하나의 단어에 대한 학생들의 재치 있는 해석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밥이라고 정의하고 싶은 이것…
국립무용단 시절, 난 바쁜 일정 속에서 후학들을 강의하러 다녔었다. 막 터질 것 같고, 아직 여물지 않은 꽃봉오리의 신선함을 지닌 열기 가득한 어린 50명의 아이들과의 만남은 한번 더 내 생활의 활력을 주며 내가 왜 계속 춤을 추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난 언제나 그렇듯이 수업 시작하기 전에 무용일기의 중요성과 함께 꼭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춤을 추는가… 춤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의식 없이 그저 테크닉에만 의존하여 겉모습 만들기에만 열중할 수 있는 나이의 학생들이기에, 그리고 적어도 예술학교의 학생들이라면 그냥 춤을 좋아해서, 아니면 누구의 강요로 춤추는 사람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보곤 깜짝 놀랐다. 내가 상상했던 과는 다르게 재미난 아이디어로 춤을 해석하며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텁텁한 이빨을 치약으로 닦고 나면 개운한 것 같이 춤은 치약 같은 존재다, 춤은 눈, 비, 천둥, 구름들에 의해 하루도 똑같지 않은 하늘과 같다. 머리를 쓰지 않으면 녹슬 듯이 춤은 매일 추어야 하는 것이므로 춤은 머리다. 알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힘든 과정을 거쳐야하는 알과 같은 것이 춤이다. 춤은 우아하게만 보여지는 백조의 다리가 물 속에서 힘들게 헤엄치고 있는 것과 같다. 꽤 유쾌한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이 무용철학자 학생들에게는 나는 감히(?) 춤은 나에게 밥 같은 존재라고 의견을 내 본다.
우리가 매일 밥 없이 살아 갈 수 없듯이, 물의 양에 따라 밥맛이 틀려지듯이, 밥 지을 때 시간을 잘 맞춰야하는 정성이 필요하듯이, 어떤 재료를 섞느냐에 따라 그 색깔과 종류가 달라지듯이, 그리고 중요한 것… 누가 짓느냐에 따라 똑같은 쌀이라도 그 밥맛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밥이므로 춤은 나에게 밥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같이 또 다른 맛있는 밥, 새로운 밥을 짓기 위해 고민하고 이것은 내가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밥 없이는 살지 못할 것 같고, 이 밥을 잘 짓기 위해 난 오늘도 나의 주방, 스튜디오로 간다. 그리고 더 행복한 것은 이 밥 짓는 일이 계속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오늘은 어떤 재료로 나만의 맛있는 밥을 만들어 볼까… 같이 맛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옆에 존재한다는 것, 그 속에서 매일 똑같지 않은 밥을 짓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지만, 또한 가장 축복 받은 삶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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