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란<주부>
한국 어느 신문에 영미 시를 번역하고, 글을 쓰던 장 영희 교수님과 나는 좋은 추억과 인연을 가지고있다. 내가 대학에서 그 분 수업을 들을 때만 해도, 막 전임강사로 부임했을 때라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고 해서 교수님 이라기보다는 선배언니처럼 스스럼없이 학생들과 어울렸었다. 학생들은 학업에 대한 고민이나, 가정문제, 진로문제, 혹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랑까지도, 선생님께 시시콜콜 찾아가서 털어놓았고, 선생님은 늘 웃음과 유머와 순수하고 열린 마음으로 기꺼이 들어주었기에, 내가 아직까지도 찾아 뵙는 이유이기도 했다. 작은 인연도 소중히 여기고 학생들이 말했던 고민들도 기억했다가 만나면 안부를 물어왔었다. 하지만 수업 내용의 강도는 무척 빡빡해서 학부시절 장 교수님 수업 두개만 들으면, 그야말로 온갖 시험과 숙제, 글 쓰기로 다른 일을 못하고 정신 없이 한 학기를 보내야 할 정도로 매달려야 했기에, 그 분 수업은 악명이 높았었다.
학교 밖 세상은 너무나 변해있는데, 심지어 학교 안에도 새 건물이 들어 서 있어서 다른 모습인데도, 지난여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분 방에서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맞으셨던 선생님의 모습은, 내가 학생이었을 때 바로 그 모습이라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고 그 후유증으로 목발을 짚지만, 강한 의지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부지런히 번역을 하고 글을 쓰신다. 온갖 역경과 좌절을 딛고 일어서서 자기 길을 가면서 밥벌이를 하는 해피엔딩 스토리를 좋아하는 나는, 그래서 그 교수님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학교를 떠나서도 계속 연락을 끊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으로 다시 들어오기 전에 다시 한번 찾아뵙겠다고 약속을 하고, 나는 바빠서 그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데, 찾아뵌 한 달 후, 장 교수님은 척추 암으로 치료를 받으며 투병중이라는 소식을 들었고, 곧 신문에 기사가 났다.
뿌리가 약해서 물을 잘 흡수하지 못해 표피가 아주 단단하고 오직 스스로의 노력으로 천년을 산다는 주목나무, 그런 나무 한 그루를 마음속에 심고, 그 강인함과 생명의 의지를 배우고 싶다한다. 이 세상에 생명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고, 그 생명 앞에는 한없이 착해지기에,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더 착하게 살아가라는 시련이라고 여기며, 문학작품 속의 많은 주인공들처럼, 역경을 이기고 일어설 것이라고 한다.
시 한 줄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나는 글의 힘, 문학의 힘을 믿는다.
칼보다 강한 것이 펜이라고, 인간의 마음을 찌르고 꿰뚫을 수 있는 것은 칼이 아니라, 바로 펜이다. 그 분 생애에 다가온 또 한번의 시련을 딛고 일어서서, 순수하고 어린 영혼의 학생들에게 이 문학의 힘을 다시 가르치시길, 그리고 아름다운 글로 많은 현대인들의 메마른 마음을 적셔 줄 수 있게 되길 멀리서나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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