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헬렌<화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던 잎새는 어느덧 내 창을 넘어 쌉살한 침묵을 머금고 있다.
가을의 끝을 마무리하는 나무들이 낙엽을 모두 떨구고 겨울로 들어가는 듯 하다. 쌀쌀한 바람이 콧등을 시큰거리며 옷깃을 올리게 하고 겨울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멘델슨의 초코렛 동화집이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조용히 평화롭게 양지 바른쪽에 앉아 말로 표현이 부족할 만큼 좋아하는 릴케의 시를 소리내어 읽으며 옹기 찻잔에 따끈한 엽차와 누군가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고…...
1896 년 22세였던 독일의 시인 릴케는 베를린 대학에서 잘로메라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잘로메는 릴케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잘로메가 트로피처럼 남자를 모으는 여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철학자 니체, 동양학자 프리드리히 칼 안드레아스와 염문을 뿌리는 동안 릴케는 조각가인 클라라와 결혼한다. 아내 클라라를 사랑했지만 릴케의 마음은 잘로메에게 있었다. 잘로메는 니체나 프로이트에게는 정신적인 교류를 넘어서는 관계를 허락하지 않았으나 늘 쇠약하고 신경증을 앓고 있던 릴케와는 동거까지 하며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 릴케는 잘로메와 함께 두 번 러시아 여행을 했고 훗날 그때 느꼈던 기쁨을 편지로 남기기도 했다. 사랑하던 사람들이 헤어지는 때는 제각각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으며, 남들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또 남들을 이해시키기도 어려운 일이다.
릴케과 잘로메도 사랑했지만 여느 불행한 여인들처럼 헤어지고 말았다. 릴케의 신경증 때문이었다. 잘로메와 헤어진 뒤 실연의 상처를 이겨내며 릴케는 아름답고 슬픈 시들을 연달아 써 나갔다. 그것이 릴케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두이노의 비가] 라는 시들이다.
헤어지긴 했으나 잘로메는 51세의 릴케가 장미 가시에 손가락을 찔려 그것이 패혈증으로 악화되어 죽음에 이를 때까지 릴케의 가장 든든한 이해자이자 후원자였다.
[두이노의 비가] 는 우리들의 상승하는 행복을 생각하다 행복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놀라움에 흡사한 감정을 느끼리니 라는 문장으로 끝이 난다. 이별은 릴케에게 행복이 후두둑 떨어져 버리는 듯한 놀라움과 고통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슬픔의 힘으로 릴케는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을 남겼을 것이다.
좀더 겨울이 무르익으면 2004년이 가기 전에 릴케의 시를 꼭 한번 읽어 보시길…
시간은 갔어도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며 사랑이란 그리 덧없는 것만은 아니리라.
12월은 말수가 적어진 침묵이 성숙함을 발효하기도 한다.
인디언들이 부르는 12월은, 강물이 어는 달이며/ 기러기 날아가는 달/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 모두 사라진 것은 달이 아니라고 했다.
나무들도 철저히 겨울 준비를 하는데 나는 여전히 허둥거리며 하루를 살아가니 어떻게 한 해를 마무리 할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