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문학박사>
이제 올해도 열흘 남짓 남았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니 년 초에 생각하고 바랐던 일들을 이루지 못한 채 허송 세월을 한 것 같아 가는 해가 못내 아쉽다. 그러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힘들었던 기억을 빨리 지우고 싶어, 이 해가 어서 지나가고 새해를 맞이했으면 하는 마음도 생겨난다. 사람마다 무엇을 아쉬워하며 한 해를 보내고, 무엇을 바라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가는 각자 자기가 처한 처지와 인생의 목표에 따라 구체적인 내용은 달라지겠지만, 대체로 흉(凶)한 일과 화(禍)는 어서 잊거나 피하고 싶어하며, 길(吉)한 일과 복(福)은 이어지고 더욱 생기기를 바란다. 그러나, 세상일은 바라는 대로 되기 보다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지난 일이야 다시 되돌릴 수도 없으니, 추억과 미련, 집착이 남아있더라도 어떻게든 정리가 되겠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일은 막연히 바란다고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미래의 일은 우리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미래는 알 수 없기에 궁금하며 때로는 막연한 불안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다른 민족에 비해 유독 한국인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새해 운수나 토정비결 등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 같다. 본인이 직접하지 않으면 부모가, 아니면 가족이나 친지 중에라도 대신하여 신년 운수 한 번 쯤은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 우리 민족이 그런 운세 풀이에 관심이 높은 것은 우리 역사와 사회가 그만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회 전체가 안정되지 않을수록, 그 가운데 생활이 안정되지 않은 사람일수록 미래는 더욱 불확실하다. 또한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기대보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은 더욱 높아진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계획적인 미래를 설계하기보다는 요행심리에 기대서 막연하게 미래를 추측하려는 경향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결국 해가 바뀔 적마다 새해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 관심의 정도만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다는 것이며, 현재 생활에 대한 만족도와 다가올 미래 생활에 대한 자신감이 낮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미래가 확실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불안해 할 것이며, 쓸데없는 호기심과 요행심리에 기대어 점을 치느라 시간과 돈을 허비하겠는가.
사실 요행을 바라면서 운세를 봐도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부작용이 클 수도 있다. 다만 운세 풀이의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는 자신을 삼가고, 좋은 경우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운세 풀이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불안감은 더욱 높아져서 오히려 몰랐을 때 보다 더욱 강박관념과 스트레스를 가지는 경우가 많고, 좋은 풀이가 나오게 되면 요행심리가 더욱 높아져서 객관적인 성찰과 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길흉화복은 막연하게 얻어지는 운수가 아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나오는 다음 두 구절은 길흉화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잘 알려준다.
소강절(邵康節) 선생에게 누가 와서 점을 쳐서 물으며, 어떤 것이 화(禍)이며 어떤 것이 복(福)이냐고 묻자, ‘내가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면 이것이 화요, 다른 사람이 나를 해롭게 하면 이것이 복이니라’고 대답하였다.
복(福)은 청렴하고 검소한 데서 생기고, 덕(德)은 자신을 낮춰 겸손한 데서 생기고, 도(道)는 편안하고 고요한 데서 생기고, 생명은 화창한 데서 생기고, 근심은 많은 욕심에서 생기고, 재앙은 많은 탐욕에서 생기고, 허물은 경솔하며 교만한 데서 생기고, 죄악은 어질지 못한 데서 생겨난다.
지극히 평범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구절이지만 새삼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할 구절이다. 길흉화복은 자신이 하기에 달린 것이지 요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자업자득(自業自得), 즉 스스로 짓고 스스로 얻는 것이요, 자신이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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