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란<주부>
올해도 어김없이 연말이 되어간다. 늘 이맘때가 되면, 헛되이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다가올 새해의 시간에 마음이 설레곤 한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고 하니, 세월의 덧없음과 인생의 무상함에 대해서는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일년의 마지막 주에 한 해를 정리해 보면, 지난 시간들에 대해서 한 점 부끄러움이나 후회스러움도 없어야 할텐데, 해마다 그렇듯이, 나는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깨닫지 못하고 쓸데없는 생각과 고민들로 발을 구르면서 허둥대며 살았고, 이렇게 또 한해를 속절없이 떠나 보낸다.
흔히들, 인생은 완성을 향하여 가는 여정이고, 인간은 나그네라고 한다. 한 해를 떠나 보내며, 올해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깨닫고 얻었을까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래도 올 한해는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드는건 왜인지.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내 안에서 놓지 못했던 헛된 욕망과 환상 때문에, 정작 가장 소중한 ‘지금’ ‘여기’의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놓치면서 살았고, 요즘에서야, 행복을 가져다주는 파랑새는 나의 마음 안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나는 나 자신과 남편, 아이들만을 위해서 사는데도, 그동안 가족들 뒤치닥거리 하느라 내가 하고 싶은 많은 나의 욕구를 희생하면서 산다고 아주 오랫동안 억울해했다. 그렇게 어리석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 무렵, 젊은 나이에 한국에 와서 한평생 힘없는 노동자와 빈민들을 위해 살면서도 평생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구석진 자리에서 온갖 허드렛일과 궂은 일만 하다가 올 가을에 세상을 떠난, 안면 있는 미국 신부님의 생애와 그 죽음을 애도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나 자신을 많이 반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작은 불편과 고통에도 많은 불평만 하고 살아 왔는데, 평생 좋은 일만 하면서도 한없이 자신을 낮추며 낮은 데로 임했던 사람의 모습은 나에게 아름다운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조금씩 철이 드는 것인지, 그 동안 깨닫지 못했던 내가 가진 많은 것들에 감사하고, 요즘에서야 작은 일상의 평화에, 아침에 눈떠서 마시는 차 한잔에도 행복해진다. 지금 보다는 어렸을 때, 아무리 풀려고 애써도 해답을 찾지 못했던 많은 삶의 물음들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나는 풀어 가고 있다. 인생에 대한 진실들은 ‘세월’만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나이 들어가는 것이 그리 억울하지는 않게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연민에 눈을 뜰 때, 세상은 좀 더 아름답고, 우리의 삶은 보다 더 완전한 삶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의 생애 처음으로 하게 된 것도, 서른 여섯 살의 나이가 내게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나 자신과 가족만을 위한 사랑 말고도 더 큰사랑에 조금이라도 눈뜨게 된 것에 대해서,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된 것에 대해서, 그리고, 이렇게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돌아온 것에 대해서 많이 감사하며 살아가는 요즘, 나의 하루 하루는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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