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크라멘토 한인 감리교회 이현호 목사
모처럼 가족들과 한국 영화를 보는데 참으로 이상했다. 마음 한구석에 영화의 배경이 되는 서울 풍경이 참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좁다란 골목길에 올망졸망 붙어있는 집들, 사람들로 가득 찬 퇴근길 거리, 남대문 새벽시장, 고층 아파트 단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 역시 저런 풍경 속에서 살아왔는데, 왜 그렇게 서울 풍경이 낯설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마음의 다른 구석엔 낯설은 만큼의 그리움이 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하철 역 근처 포장마차에 들어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 한 그릇 먹고 싶고, 따뜻한 온돌방에서 낮잠을 실컷 자보고 싶고, 잠 못 이루는 밤에는 새벽시장에 나가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보고도 싶고,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어울려 밤새도록 수다도 떨어보고 싶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낯설음과 그리움의 경계선상을 서성거려야만 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사이좋게 내 마음의 절반씩을 차지하고 있던 낯설음과 그리움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 날 밤, 탐스럽게 차 오른 달을 쳐다보며, 저녁 내내 나를 쫓아다녔던 그 낯설음과 그리움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정말 행복하게 살고 싶은 내 욕구의 표출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한편으론 공기도 탁하고 시끄럽고 복잡한 이전의 생활환경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서울에 대한 낯설음을 조장하고, 다른 한편으론 이전에 누릴 수 있었던 자잘 자잘한 삶의 재미를 되찾고 싶은 마음이 그리움을 모락모락 피워내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이 주는 ‘자연의 혜택’과 한국이 주는 ‘사람 사는 재미’를 동시에 누리면서,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욕심일까? 가능하면 더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야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지만, 이것도 얻고 저것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면 그 마음이 오히려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텐데, 이를 어쩌나 싶다.
어디 나뿐이랴! 고향을 떠나 살면서, 그것도 머나먼 타국 땅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고향에 대한 낯설음과 그리움을 한쪽씩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나뿐이랴! 오늘은 정말 나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만나 서로가 서로의 그리움을 채워주면서 그렇게 밤을 보내고 싶다. 똑같은 그리움을 지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넉넉히 벗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야 어차피 서로 다른―이름도, 자라온 환경도, 살아가는 방식도, 추구하는 것도―것인데, 다르다고 담쌓고 손가락 질 하면서 살아갈 이유가 뭐 있을까? 서로 다른 종류의 풀들과 나무들과 꽃들이 모여 산을 아름답게 하는데, 우리 인간들은 더 잘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 더욱이 같은 그리움을 지녔다면, 더욱 더 잘 어울려 살 수 있지 않을까? 더욱 더 서로에게 친절할 수 있지 않을까? 더욱 더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오늘밤에는 감히 ‘민족’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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