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
몇달만에 불쑥, 태평양이 닿아있는 오션비치 쪽으로 가 보고 싶어졌다. 오션 비치를 말하자면, 가끔 현대화물선이 금문교 쪽으로 지나가는 것이 보이면 오랜 친구 보듯이 반갑고 더 많은 한국이름의 화물선이 좀더 많이 보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오션비치는 그렇게 아름다운 바닷가는 아니다. 모래도 하얗거나 깨끗하지도 않고 태평양을 하염없이 표류하다 쓸려 들어오는 해류잡초 갈기나 다 바래터진 나무가지들이 허옇게 등뼈를 드러낸 채 피곤하게 널부러져 있기도하여 항상 지저분해 보인다. 오늘 생각나는 몇십년 전에 본, 영화화 된 군터 그라스의 “틴 드럼”에서 나오는 바닷가 장면은 세상에 태어난 이유만으로 불만에 가득 차 성장을 포기한 아이가 항상 다급하게 치는 드럼소리를 빼앗길라치면 목청이 터져라 악을 쓰며 저주스러운 일상생활을 산산이 깨고 마는, 그리고 그 아이가 바닷가에서 본, 어른들이 말의 몸통에서 뱀장어를 빼내는, 어른들이 막막하게 우왕좌왕하는 피크닉 장면도 있는 그런 바닷가. 군터 그라스는 최근의 유럽 미국식 자본주의화에 실망하며 이에 절망한다고 하였다.
바닷가는 이미 하루의 석양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명당자리를 서둘러 찾는것이 보였고 해는 서쪽으로 급속히 기울어지며 순식간에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하였다. 언덕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다와 석양이 잘 보이는 곳에 서서 천천히 길게 바닷내음을 들이 마셨다. 바닷 공기는 아이가 잠시나마 멈추어 버리려한 저주받은 역사 혹은 하찮은 세월, 울움조차 터트리지 못하는 상실감에 이르른 군상들을 감지한 바닷가 주위를 급히 어둡게하고 모두들 이에 이끌리고 마취되어 바닷가를 서성이는듯 하였다.
순간, 멀리 조그맣게 언덕 아래쪽 수트로 수영장 폐허 위에서 트라이포트를 놓고 사진찍기에 몰두하는 사람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가 찍고자하는 이미지는 육중한 바위가 부서져라 때리는 석양속의 파도인가? 드럼을 치는 난장이? 그의 외침? 그는 어느 이미지를 뭉텅뭉텅 잘라 직사각형의 프레임속에 집어넣고 있을까? 그의 카메라는 디지탈일까? 에드워드 무이브리지의 인간신체 기록사진들, 백남준의 컴퓨터 설치 작품 “굳 모닝 아메리카”, 내셔날 지오그래픽의 원주민 사진들, 식민지 시대 일본 고고 학자들이 한국에서 찍던 사진들이 군터 그라스의 바닷가와 겹치는 것을 보며 해가 진 오션비치를 뒤로했다. 저녁 노을 시간에 때 맞추어 편리하게 켜 졌을 가로등, 한인들이 운영하는 곳도 있는 동네가게들의 불빛이 명멸하는 게어리 블르바드를 천천히 지나 “세이프 웨이”에 들려 김치 한 병과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한통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 나의 샌프란시스코 오션비치 바닷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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