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스포츠 채널인 ESPN을 보고 있었다.
뉴욕 메츠와 양키스의 인터리그 경기의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갑자기 ‘코리아’라는 말이 튀어나오면서 구대성의 모습이 보였다. 혹시 무슨 사고(?)쳤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국 선수들이 뛰는 경기를 본 한인이라면 비슷한 경험이 있다. 잘 던지면 물론 기분이 좋지만, 공 하나 하나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조마조마한 심정 말이다. 미국 언론(방송)에 비치는 한국이나 한국 선수들의 모습은 기본적으로 그다지 유쾌한 편이 아니다.
북핵 얘기가 나오면 가슴이 철렁하고, 한국의 데모하는 장면, 그리고 스포츠에서도 한국 선수들이 잘할 때는 가볍게 흘려 지나가지만 문제가 생기면 되풀이하면서 보여주곤 한다.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 대한 미국인의 무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국력의 차이도 있겠지만. 하여튼 ESPN에서 비춰준 구대성의 장면은 참으로 재미있었다.
못 보신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메츠에서 중간 릴리프로 뛰고 있는 구대성은 이 경기 전에 우스꽝스러운 타격 모습으로 조롱을 받은 적이 있다. 메이저리그 첫 타석에서 구대성은 홈플레이트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배트를 들고 있다가 삼진 아웃으로 그냥 들어갔기 때문이다.
구대성은 이날 경기에서 또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TV에서는 메이저리그 첫 타석에 들어섰던 모습을 비춰주었다. 양키스의 투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좌완 에이스로 꼽히는 랜디 존슨. 이 정도면 누구나 ‘구대성이 또 서 있다가 망신당했나’하는 생각이 들것이다. 그러나 믿어지지 않게 구대성은 큼직한 2루타를 쳤다. 카메라는 메츠의 덕아웃에서 동료 선수들이 크게 웃으며 마치 자신이 홈런을 친 것보다 더 좋아하는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구대성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다음 타자의 희생 번트 때 상대방의 방심을 틈타서 갑자기 3루에서 홈으로 뛰어들었다.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재방송 결과 사실 아웃 타이밍이었다) 메츠의 홈팬들은 기립박수를 보냈고, 메츠 선수들은 마치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것처럼 구대성을 맞아들였다.
스포츠 캐스터는 “한국에서 온 구대성”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여러 차례 방송을 되풀이해서 보면서 이런 것이 ‘스포츠의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김주찬
뉴욕지사
취재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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