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수필가, 환경엔지니어>
중국을 찾아서
중국은 듣던 대로 풍수(feng shui 風水)의 나라였다. 북녘 산세가 높고 남쪽으로 훤히 트인 명당을 찾아 문화를 이루었다. 북방 오랑캐의 음기를 막고 남쪽으로 흐르는 양력을 뻗쳐 자연과 인간 삶의 조화를 극대화하려는 노력이었다. 북악 (北岳)에 만리장성을 병풍처럼 두른 북경도 천하의 명당 터라고 했다. 몽고왕 쿠빌라이 칸이 13세기 연(燕)나라를 이곳에 세운 뒤, 명과 청조에 이르기까지 천년 도읍이었다.
자금성도 거대한 네모꼴 명당이었다. 남북을 잇는 축은 옛 성곽 정문인 영정문에서 북쪽 끝 종루까지 약 8km에 이른다. 그 축을 따라 천안문과 정전(正殿)인 태화전, 그리고 중화전, 보화전이 금실에 꿰인 진주 알처럼 일렬로 박혀있다. 궁들에 모두 조화(和, harmony)란 이름을 붙인 것도 풍수설에 연유한다. 모두 9천간이나 된다는 건축물들도 좌우 대칭의 틀 속에서 정교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네모꼴 중앙에 놓인 용상(龍床) - 그 황금빛 옥좌는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中華)사상의 상징처럼 빛나고 있었다.
중국은 네모꼴 문화입니다. 가이드 유양의 말이다 그러고 보니 서민 전통가옥 사합원(四哈院) 역시 네모반듯하다. 좌우 대칭인 방형(方形) 구조다. 네모꼴 문화는 질서와 위계, 원칙과 형식주의를 상징하지요. 질서와 원칙을 중시하는 바람직한 점도 있습니다. 허나 앞뒤가 꽉 막힌 형식과 체면 때문에 할 일도 제대로 못하는 비합리주의 적인 요소도 많지요. 이것은 오랜 유교의 영향입니다. 그러나 중국에는 또 하나의 종교, 노자의 도교(道敎)가 균형을 잡아준다고 볼 수 있지요.
그 말을 들으니 중국인의 마음에는 유교와 도교가 함께 있다. 라고 한 현대중국 문학의 대가 원이둬(聞一多)의 말이 생각난다. 중국인의 심성 속에는 권위주의적인 유교문화와 개인적 취향과 실리를 추구하는 도교적 생각이 함께 녹아있다는 뜻이다. 유교는 엄하고 도교는 융통성이 있다. 유교가 고전주의라면 도교는 현실도피와 환상주의다. 유교는 규범으로 사람을 속박하지만 도교는 무형식으로 사람을 풀어준다. 그래서 유교가 네모꼴이면 도교는 동그라미다.
중국 사정에 밝은 특파원의 글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실제 중국인들을 대하면 처음엔 의리와 예의 등 명분을 내거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러나 일이 진행될수록 철저하게 타산적인 면모가 나타나지요. 겉과 속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중국인의 네모꼴 체면중시와 동그라미 실리추구의 이중적 성격을 잘 드러낸 체험담이었다.
우리는 만리장성(萬里長城)으로 향했다. 막상 가서보니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유적순례는 그래서 직접 발로 가서 보아야 하는 답사(踏査)라 했던가! 험한 산세와 가파른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성곽의 자태가 생각보다 훨씬 웅장하고 아름답다. 정말 긴 한 마리 용처럼 산마루를 휘돌아 올라가는 그 역동적인 모습에 숨이 막힐 정도다. 로마의 유적을 볼 때와는 또 다르다. 벽돌 한장, 기왓장 하나 하나에 동양적 친근감이 배어있다. 구불구불 만 오천리 길. 성 위는 기마병 넷이 나란히 갈 수 있을 만큼 폭이 넓고, 양쪽에서 쏜 화살이 서로 닿을 수 있는 거리마다 망루를 세웠다. 우리 일행들은 서로 등을 밀어주며 가장 높은 망루까지 숨을 몰아쉬며 오른다.
만리장성은 2천년 동안 끊임없었던 살육과 전쟁의 역사가 남긴 자취였다. 옛 중국은 2년 반 중 평균 일년은 전쟁이었다. 해서 중국인들은 인생의 1/3을 전쟁 속에서 살아야했다. 전쟁이 없는 해엔 징집을 당해 도성을 쌓거나 길을 닦았다. 오죽했으면 중국인을 륙민(戮民)이라고 했을까. 도륙(屠戮)에서 살아남은 백성이란 뜻이다. 수세기 동안, 폭정과 수탈과 속임수에 시달리며 중국인들은 네모꼴도 되고 둥글기도 한 이중성을 터득했으리라. 중국인의 얼굴에서 공자와 노자를 함께 읽으며, 그들은 우리에게 웃는 친구이자 낯선 이방인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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