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
2003년 가을, 인권문제연구소 시상식관계로 서울행을 하였다가 로스엔젤레스지역 평통위원이며 연구소회원 겸직인분들도 꽤많던 100여명과 함께 묻어 금강산엘 가게되었다. 내가 금강산엘 가게되다니! 어렸을적 집안을 굴러다니던 한국미술전집에서 우연히 본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를 본후 금강산엘 무척 가 보고 싶었는데 뜻밖의 기회가 온 것이다. 금강산은 그랜드 캐년이나 히말라야산을 본 적이 있다면 별 볼일이 없을것이라고 누군가 귀뜸 해주던 것이 생각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마음귀퉁이에서 똬리를 계속 틀고있던 터-.
북한은 외국이고 그럼으로 해서 당연히 외국여행을 할 때처럼 속초에서 세관검사를하고 봉래호에 올라 출발했다. 세관검사에 잠시 긴장이되었지만 지척에 있는 금강산엘 간다는 생각에 한편으론 오히려 담담한 느낌이었다. 금강산은 묘한 산이었다. 분명 거대한 산은 아닌데도 웅장해 보였고 역시 누가 뭐라해도 알차게 속이 꽉 찬 산이었다. 그리하여 펄펄 살아있고 힘이 품어나며 골고루 구도가 완벽하게 짜인산봉우리들이며 계곡, 그리고 그 사이로 흐르는 폭포수… 이 모든 것이 역시 겸재의 금강산이었다. 그 산의 정기는 비교 될 수없는 독특한 위엄이 서려있었다. 점점 좁아지는 산길을 한참 올라가다보니 앞 바위산에 ‘주체, 자강, 자주’ 등의 구호와 김정일, 김일성을 찬양하는 빨간색의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것을 드릴로 파서 빨간페인트를 찍었는지 아니면 정으로 석공처럼 조그만 끌로 쪼아파서 천연 염색을 하였는지, 얼마나 걸려서 저 작품 을 마치었나 등등 별 생각을 다 하다가 파진글 내용을 보니 퍼뜩 ‘아이고 참, 내가 북한에 와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 깨달음도 잠시뿐, 오를수록 하늘에 멀리 그리고 가까이 웅장하게 보이는 산 봉우리들이 너무나 겸재 적으로 그리고 또한 동시에 아주 컨템포러리하게 자코메티의 조각처럼 뾰족하게 서있는 인간의 군상들 혹은 신선들이 아닌가? 금강산의 일만 이천봉이 모두 이 자세로 그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인가? 조선후기의 대표적 화가 겸재 정선 (1676-1759)은 중국의 자연을 보지도 않고 중국산수화를 베껴 그리는 것에서 벗어나 한국의 산천을 독창적인 화법으로 화폭에 담는 진경산수화를 창출하여 한국회화에 신기원을 마련하였다. ‘금강전도’ 에 나타난 필법은 거센 필선으로 중첩한 무수한 봉골을 죽죽 그려낸것으로, 금강산과 같은 골산에 걸맞다. 또한 지도 제작법에서 영향을 받은것으로도 여겨진다하니 조선시대 지도를 그리던 화공들은 필경 겸재 같은이의 눈으로 우리의 땅을 보았으리라. 나는 금강산의 일부만 며칠간 가보고는 마치 다 본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어쩐지 이젠 곧 생각보다 빨리 금강산뿐만이 아니라 북한의 다른곳도 쉽게 가 볼수있고 한국 미술사학 공부도 반쪽 공부가 아닌 온전한 공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번엔 어떻게 하면 좀 사흘이 아니라 넉달 혹은 몇년동안이라도 자유로운 여행이 허락되어 제대로 우리나라를 보고 배우게 될지 궁리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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