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선배기자를 통해 씁쓸한 내용의 제보를 건네 받았다. 제보자는 75년 동안 LA지역 저소득층의 권리 옹호를 위해 다양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LA법률보조재단의 인턴직원이었다.
중국계 법대생인 그가 한인 기자를 찾은 이유는 비영리단체에서 한인 사립학교장이 거액의 학비를 챙겨 달아난 사기사건 케이스를 맡고 있는데, 또 다른 피해가 우려돼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항상 기사 소재를 찾고 있는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었지만 한인의 비리를 타인종으로부터 연락받고 취재를 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재단에서는 과거에도 비슷한 피해를 당한 한인을 도와준 적이 있다”며 “유사사건에 의한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아 한인들에게 관련 사실을 알리기 위해 신문사에 연락했다”고 말했다.
그의 얘기를 듣는 동안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통화를 하면서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미국까지 건너와서 같은 한인끼리 사기를 치는 것도 슬펐고, 이런 안 좋은 사건이 계속되면서 타 커뮤니티에서 한인사회를 사기와 불법이 만연한 곳으로 매도하는 현실도 비참했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오는 타민족 제보자들의 사연은 ‘6.25 때 헤어진 전우를 찾아달라’는 것을 빼면 대부분 한인사회에 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ABC사 사기사건 때는 유타주의 사립탐정이 문의를 해왔고, 엘파소 이민국 관리로부터도 밀입국자 현황과 관련된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히스패닉 직원을 무시하는 한인업주의 행태를 비난하는 익명의 전화는 지금도 가끔 걸려 온다.
이런 제보들은 기자 입장에서는 좋은 전화다. 이번 경우에도 통화를 한 뒤 재단 관계자를 통해 피해자를 만나 기사를 내보냈다. 피해자들로부터 좋은 기사를 써 줘 고맙다는 전화도 받았지만 한인사회의 오명을 담보로 칭찬을 받는 것 같아 뒤끝이 개운치 않았다.
신문사 편집국에는 참 많은 전화가 걸려온다.
흔히 제보 전화라고 하는 것들인데 꼭 딥스롯 같은 제보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맛있는 해장국집이 어디죠?”, “악덕 업주 좀 신고하겠다”, “기사 똑바로 써!” 등 다양한 사연을 듣게 된다. 함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도 있고, 그러면 안 되지만 언성을 높이게 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기사거리가 없어 데스크로부터 한 소리를 들어도 이처럼 우리의 허물이 다른 커뮤니티에 알려져 거꾸로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는 제보전화가 없어지는 한인사회가 되면 좋겠다.
이의헌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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