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주부>
남편은 언제나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직장에 갈 때도 청바지를 입고 출근한다. 웬만한 곳은 청바지를 입어도 무난한 미국이라서인지도 모르겠다. 결혼 초기에 남편은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조금 얘기해 주었다. 10살 즈음에 이민와서 살기 시작한 뒤로 이민 1세의 자녀들이 대부분 어려운 시절을 겪었듯이 그도 그랬단다. 중학교 때부터 옷공장에 나가 일을 했고 버스값을 아끼느라 이사한 뒤로 멀어진 학교를 매일 두시간씩 걸려 자전거로 통학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제도를 배웠고 제법 일을 잘하게 되자 회사에서 써주겠다는 사실을 만류하고 동부로 대학을 갔다고 했다. 캘리포니아에서만 자란 덕분에 따뜻한 털옷도, 긴바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간 동부의 겨울은 매서웠다 했다.
대학 때도 두 곳에서 일을 하며 공부를 해야했던 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터라 결혼 후 가족을 위해서는 오히려 많은 배려를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 특히 옷 사는데 돈을 들이는 것은 질색해 한다. 그래도 아내의 생일이나 어머니날이 오면 귀걸이, 목걸이 등으로 사랑을 표시해 오곤하여 황송함을 금할 수 없게 만든다.
오늘은 문득 이런 말을 한다.
청바지는 12달러 짜리면 돼. 아마 지난 번에 무릎이 불룩나오고 밑단이 다 닳은 남편의 청바지들이 보기 영 딱해 새 청바지 2벌 사가지고 온 걸 탓하는 말일 게다.
워낙이 40불짜린데 할인해서 22불인가 하더라구. 그래서 얼른 샀지 뭐. 내 변명은 남편 앞에서 늘 궁색하다. 그가 다시 말한다. 그래도 할인할 때 12불짜리 사면 두 개 살수 있는 데, 그렇게 비싸게 주면 한 벌밖에 못사게 되잖아. 알았수다!
작년 겨울에는 성탄절에 유명브랜드 와이셔츠를 40불 넘게 주고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반환해 오라고 해서 다시 구입점에 다녀온 경험이 있던터라 또 물르라고 하면 어쩌나 싶었다. 그런데 다행히 아무 말이 없다.
당신은 정말 존경스러워~! 치켜주는 말에 남편이 으쓱해 한다. 결혼생활 14년에 아직도 청바지 가격으로 실랑이를 벌이고 산다. 아내에게는 좋은 옷을 사주는 남편에게 미안하다. 고마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은데 아마 앞으로도 옷으로는 절대 가능하지 않을것 같다. 옷장에 반 이상 가득한 아내의 옷들과 몇가지 덩그렁 걸려있는 남편 쪽은 가방 등으로 공간이 채워져 있다. 얼마 전에는 티셔츠를 $2.50짜리로 싸게 샀다고 하면서 막 신나해 했다.
그렇게 너무 싼건 오래 못입어요, 목도 금방 늘어난다구.
속에 입을 거니까 상관없어. 한다. 멋내지 않는 수수한 남편이 좋기는 하지만 어쩌다가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나 폼생폼사 하지 않기에 감사하다. 상대방을 향한 마음은 가난하지 않기에 더욱 빛나 보인다. 본 받을 것이 많은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정말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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