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니스트 스미스 일병
▶ 2차대전시 홀로 독일 탱크 및 적군 다수 궤멸 시켜
“나는 단지 군인으로서 나의 직무를 다 했을 뿐이며 나의 진정한 영웅들은 이태리에 묻혀 있습니다”
최고 무공 훈장인 빅토리아 크로스 메달을 수여 받았던 유일한 생존자이던 전쟁 영웅이 사망했다.
2차 대전 당시 이태리 북부 전선에서 거의 혼자 해치우다시피 독일 탱크들과 적을 무찌른 공으로 빅토리아 크로스 훈장을 받았던 어니스트 스미스 일병이 지난 3일 91세를 일기로 밴쿠버 자택에서 세상을 떴다.
빅토리아 크로스 훈장을 받은 93명 중 1명인 그는 1914년 5월 뉴 웨스트민스터에서 태어나 40년 3월 육군에 입대하기까지 통조림 공장 및 전기상(商)에서 일했다. 43년 이태리 시실리 전선에 투입된 그는 가슴에 수류탄 파편을 맞고 북아프리카 소재 한 병원에 후송되어 2개월간 입원 후 44년 10월 다시 이태리 북부전선인 사비오 강에 교두보 구축 임무를 받고 투입된다.
휴대하는 일명 PIAT라고 불리는 안티-탱크 무기를 든 보병은 근접거리에서만 효과를 볼 수 있어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료인 지미 테넌트 일병과 함께 탱크가 10미터 이내 접근할 때까지 숨어 있다가 탱크의 측면이나 트랙 부분을 공격해 무력화시킨 후 탱크에서 나온 독일군들을 사살하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전투 장면에 대한 회고를 통해“완전히 오픈 된 평원에서 전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곳에서 숨어 싸우는 것이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라며“방어가능 지역에서 독일군 탱크와 적을 공격하자 그들도 죽기 싫어서 그런지 결국 퇴각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테넌트 일병이 커다란 부상을 입자 그를 구하기도 했지만 정작 전투에서는 적을 포로로 하는 것보다는 적 사살에 주력했다.
그는 이와 관련 훗날“나는 적을 포로로 삼는 노고로 봉급을 받았던 것이 아니라 적을 사살토록 봉급을 받은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한편 그의 어릴 적 친구들은 그에 대해 숲 속 다람쥐 사냥에 능했으며 고교 때는 달리기에도 뛰어나 그의 달리기 스피드 때문에 스모키(Smokey)라는 별명도 얻었다.
육군 당국은 유럽전선에서의 당시 전과로 빅토리아 크로스 수상자로 선정된 그가 44년 12월19일 런던에서 개최되는 수상식에서 수상을 거부할까봐 런던 행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는 나폴리 공항까지 그를 연행(?)했으며 런던 도착 후에도 식이 끝날 때까지 감금하다시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전선에서의 전투가 끝나던 시점인 45년 4월 제대하고 47년 사진사와 결혼한 그는 뉴 웨스트민스터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다 한국전이 발발하자 다시 입대해 하사관으로서 모병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노환으로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관련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는 금년 5월 네덜란드 해방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온 후 건강이 악화되었으며 그가 평소 원했던 대로 전쟁터가 아닌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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