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
이제 다 성장해 뉴욕에서 대학교엘 다니는 나의 딸은 아빠가 백인인 혼혈아이다. 딸을 나아서 키우며 이핑계 저 핑계로 그애와 많은 시간을 못 보낸 것이 목에 걸리지만 오히려 나자신이 마치 그애와 함께 새로 태어나고 자라나는 것 같은 착각을 종종하게 되던 때가 기억에 남는다. 그애가 어릴 때 상항한국학교엘 보냈더니 가나다라 배울 때가 언제냐 싶게 금방 며칠사이에 한국어 책을 쫄쫄 읽더니 쏭아지 쏭아지 얼룩쏭아지 노래를 부르며 애교를 떨고, 삼일절이라고 유관순누나가 새~앵각납니다 하고 아주 감정을 넣어가며 열심히 부르더니 하루는 목청 높여 태극기가 바람에 퍼~얼럭입니다~아 태극기는 우리나라 기~잇발입니다~아 하고 정말 열창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도 신기하고 기특해서 감탄을 마지않았는데 더구나 딸애가 유관순이 누구며 왜 옥속에서도 만세를 불렀냐고, 그리고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내게 물었을 때는 어머! 놀라워라! 너는 역시 내딸이다! 하고 신이 나서 설명을 해주었다. 그런데, 하루는 하도 딸이 책을 좔좔 잘 읽으니까 의심쩍어서 너 그 읽은 것을 영어로 내게 알려다오 했더니 쭈빗쭈빗하다가 뜻을 모른다고 고백을 하는 것이었다.
이럴수가! 역시 너는 내 딸이 아니다. 너의 백인아버지 딸이다. 그 뜻은 그애는 한참 한국인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가슴으로부터 새기는 것을 배워야하는 하나의 새싹이다라는 것이었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할때 그애는 두손을 왼쪽심장에 가져다 놔도 모자라는 제삼의 정체, 혼혈아이라는 것이었다. 김치 불고기 맛있게 먹고 한국말 잘한다고 저절로 한국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온가족이 배우는 순간이었다. 딸아이가 한국학교를 언젠가부터 더 이상 가고 싶지 않다고 고집을 부렸을 때-. 나는 그때 그애에게 학교에가라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공갈, 협박내지는 뇌물주기에 아양까지 다 떨었지만 통하지않았다. 그때의 실망과 슬픔은 낯익은 것이 아닌 새로운 형태로 다가와 내등짝에 깊은 문신을 새겨놓았다. 내가 혼자서 만질 수 없는, 그래서 잊지 못할 등짝의 상처.
그런데 몇년후 그애가 고등학교엘 다닐때에 하루는 할아버지가 자기 학교에 오셔서 가족이 육이오를 겪은 경험을 자기반 아이들에게 강의를 해줄수있느냐고 물어왔다. 아버님은 물론 쾌히 승락을하셔서 강의를하셨고 그강의를 듣는 백인학생들의 아주 진지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재미한인커뮤니티가 미래에 어떻게 변해있을지는 모르겠다. 중국커뮤니티같이 예나제나 한결같이 변화가없을지도 모르고 일본 커뮤니티같이 흩어지고 섞여서 몇세대가 지난 지금 껍데기만 남은 제펜타운을 지키려 일본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소수의 후세들이 아둥바둥 안쓰러워하게될지도 모르지만 각 커뮤니티마다 독특하게 민족과 문화와 얼을 이어나가고있는 것을 보면 우리일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하느냐는 정체성에 관해서만는 복받은 세대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