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골프를 치시던 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
“박 세리 선수가 왜 요즘 성적이 안 좋은 줄 아세요? 나이 어린 선수들이 치고 올라오니까 조바심이 생겨서 더 못 치는 거예요.”
실제 그렇게 잘하던 박세리 선수가 왜 요즘 제대로 못 치는지 필자는 잘 알지 못하지만 골프나 테니스나 이번 홀에서 아니면 이번 게임에서 꼭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을 때는 아마추어들은 자기 실력을 내기 힘들다.
프로선수들은 스포츠 심리학을 공부하고 또 비범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 많아서 우리 아마추어들보다는 낫겠지만 인간이니까 기대가 높을 때는 그들도 제 실력을 내기가 힘들지 않을까 한다.
이럴 때 우리 한국 분들은 모두 들은 바가 있어 말로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기기 위해 마음을 비우려고 하니 마음이 제대로 비워질 수가 없고 결국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로 끝나는 때가 많다. 법정 스님처럼 자기가 얘기하는 무소유의 철학을 그대로 실천해서 우리 모두의 존경을 받는 분도 있지만 할 일 많은 우리 보통사람들이 그 분처럼 산 속으로 들어가서 모든 걸 버리고 평상심으로 살수는 없는 형편이니 기대를 버리거나 마음을 비우는 것은 실제로 옮기기가 역시 어렵다.
한국에서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그래도 참신한 모습으로 의정활동을 보이다가 은퇴하고 일본에서 대학 강의를 하고 지내는 분이 지난번 미국 방문에서 한 얘기가 지금도 머리에 남아 있다. “지금 한국의 많은 문제들은 국민들의 분수에 넘치는 과도한 기대로 생겼고 그래서 그 해결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 과도한 기대들은 사회계층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있는 고질이다.” 사실 미주에 사는 우리 동포들은 한국에서 온 많은 분들의 기세에 눌려 기가 죽은지가 오래 되었다.
한국에서는 교수가 한 학기 미국 대학에 공부하러 오는 것도 ‘국무부 초청으로 교환교수’로 오고, 연예인이 한인타운에 하룻밤 노래하러 오는 것도 ‘해외 초청공연’이라야 하고, 자식이 미국 대학에서 우등생으로 졸업하면 ‘전교 수석졸업’이 되고(실제 미국대학 어디에도 수석졸업이란 제도는 없다는 걸 재미동포들은 알고 있지만), 한국 출신 야구선수가 제대로 게임을 해서 감독이 “잘했다” 한마디하면 ‘모든 미국 스포츠 전문가들이 격찬’한 것이 되고, 주부들이 동네에서 괜찮은 이웃들과 모여 노는 것도 ‘외교관 부인들과의 모임에 나갔다’ 온 곳이 되어야 하고, 그냥 좋게 마시면 될 와인이나 위스키도 보르도와 발렌타인 30년이어야 한다. 이것이 좀 넓은 무대가 되면,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의 군사정보도 충분히 없어 미국에 기대어야 하는 처지에 ‘자주국방을 하겠다’가 되고, 국민소득 천불을 넘어서고는 주춤한 처지에 “국민소득 삼천불”의 시대로 향한 구호들이 나온다.
지금 한국에서 되어 가는 사정은 한국의 양식 있는 분들이 얘기하듯 좀 심하다 못해 정신병 증세라고 해야 할 수준이 아닌가 싶도록 걱정이 된다. 그냥 자기 자신의 업적을 바탕으로 하면 될 선거운동도 ‘독립군의 딸’로 포장을 하다 부끄러운 과거의 진실이 밝혀져 호되게 당하는 것도 그 한 예에 속한다.
꿈은 좋은 것이다. 꿈이 있으니까 이룩하게 되는 것도 있다. 그러나 꿈과 현실에서의 기대감은 우리 모두가 다르게 보아야 제대로 인생에서의 설계가 나온다. 우리 이제 꿈은 꿈이라고 얘기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꿈이 현실과 두리뭉실이 되어버리면 무엇을 달성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근본적인 신용이 의심되기 때문이고, 한번 잃어버린 신용은 되찾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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