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프리스쿨에 다섯 살 난 손자를 데려다 주는 길에 우리는 대개 손을 잡고 걷지만 아이가 타박타박 앞서 가기도 하여 그 뒷모습이 때로는 애연하게 보일 때가 있다. 요즘 세상이 하 수상하여 나의 분신인 이 아이가 앞으로 세상 살아갈 일이 측은하게 생각되어서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아이들을 질병과 굶주림에서 구제하지 못하고 있고 성과 노동력을 착취하는가 하면, 먹고 살만한 나라에서는 어른들의 불의와 탐욕이 아이들의 세상살이 길을 오도하고 너무 일찍 생존경쟁에 내몰고 있다.
돈에 대한 집착으로 어른들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너무 단순해 아이들에게 인생의 낭만과 다양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특히 부모들이 자녀에게 도덕적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이 시대의 수치이다.
내가 8시경 손자와 함께 학교에 가보면 이미 출근길에 맡기고 간 아이들이 와있고 또 아이를 떼어놓고 차를 몰고 나가는 어머니들을 본다. 가끔 선생의 품에 안겨 울며 몸부림치는 아이를 보기도해 아이의 슬픔과 어머니의 고통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 경우는 올해 유치원에 입학할 손자를 지난 1년간 오전 시간만 학교에 보내왔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부모의 퇴근시간을 거기서 기다린다.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가족들과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가족 속에서 도덕적 감각을 익히고 부모의 사랑을 머금어 동심의 향기를 풍기는 유년기가 아닌가.
내가 염려하는 것은 아이들이 사춘기에 이르러 나 홀로 시간에 TV와 컴퓨터를 너무 즐기는 것이고 동성 결혼 같은 해괴한 자유주의이다. 비디오게임은 그 중독성이 마약 같고 컴퓨터는 이용에 따라 천사와 악마의 경계를 넘어들며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동한다.
진보적인 정치가와 판사에 의해 동성결혼이 인권이란 수사로 합법화되고 있다는 것은 수치이다. 부모의 도덕성과 교육이 아이들의 정신적 성장을 받쳐주지 못하면 악마의 시험에 빠져든다.
어머니가 집에서 일하며 아이들을 돌보던 시절이 먼 옛날 같다. 요즘은 어머니도 각종 빚을 같고 교육비를 벌기 위해 일해야 하는 절박한 세상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학교에 보내는 것이 즐거운 일이 아니고 귀찮아하는 세상인 것이다.
결혼기피, 출산기피, 이혼 등 여성의 이기는 남성에 대한 반란이기도 하다.
선진국에서 저 출산, 고령화가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50년 뒤를 생각해서 기업과 국가가 어머니들에게 투자할 때이다. 기업이 일하는 어머니들을 위해 아이들을 대신 돌보는 제도적 장치를 하고 국가가 유아들의 어머니에게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어머니들에 대한 투자는 국가 백년 대계를 위한 것이다.
남진식/사이프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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