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초등학교 시절 ‘동상 세우기’ 붐이 일던 그런 때가 있었다.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싸구려 청동 칠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초등학교 운동장마다 여지없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그 옆 한켠에 ‘반공 소년’ 이승복의 동상도 빠지지 않았던 그 시절, 한국은 가히 ‘동상의 나라’라고 할만큼 동상이 지천으로 널려있던 나라였다. 남북한의 갈등과 대결이 첨예했던 그 당시의 군사독재 정권에게 그 시절은 동상을 통해서라도 전 국민을 이념적으로 하나로 묶어내는 동원체제가 절실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 시절 광화문 사거리에서 마저 거대하고 위압적인 모습으로 내려보던 이순신 동상은 ‘누란지기’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군인’의 상징으로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의 이미지와 오버랩되어졌고 이승복 소년은 ‘짐승만도 못한’ 공산당에 대한 국민적 ‘분노’의 상징으로 치환됐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30여년의 세월이 흘러 싸구려 청동 칠의 그 이순신과 이승복 동상들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자취를 감춘 지금 한국은 여전히 그 ‘동상’의 이념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맥아더 동상 논란이 바로 그렇다.  
맥아더 동상을 둘러싸고 ‘동상타도’와 ‘동상사수’를 외치는 양쪽의 대결이 투석전을 벌일 만큼 치열하게 전개되고 이 청동제 동상논란이 ‘6·25 전쟁, 미국과 남북분단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이념 논쟁으로 확대돼 이제는 대통령에 이어 미국 의회까지 개입하는 한미 외교문제로 비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이번 논란을 통해 그동안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은 구세주이자 자유의 수호자’로 한국 무속신앙에서는 ‘신’으로까지 추앙 받는 맥아더를 ‘남북분단의 원흉’이라거나 ‘원폭 26개 투하를 계획한  전쟁광’ 또는 ‘대통령병에 물든 정치군인’ 등으로 평가하는 다양한 역사적 시각들이 노출돼 그를 냉정하게 재평가할 수 있게 하는 기회를 갖게됐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논란의 맹점은 ‘철거’든 ‘사수’든 양쪽 모두 ‘동상’을 역사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점일 것이다. 맥아더에 대한 역사의 재평가든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념적 시각의 차이에서든 ‘맥아더 동상’을 한국 역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냉정함이 양쪽 모두에게 결여돼 있다.  
영광의 역사도 오욕과 치욕의 과거도 우리의 역사이며 맥아더 동상도 그 자체로 우리의 역사라는 점을 양쪽 모두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구국의 은인이자 자유의 수호자’의 상징이든 ‘분단과 전쟁’의 상징이든 이제 ‘동상’은 ‘이념’이 아닌 ‘역사’로 남겨두자. 역사는 투석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김상목
사회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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