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
고구려관련 학술대회가 지난4월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에서 있었다. 이것은 한국과 중국을 벗어난 서구에서 고구려사 관련 학자들이 모여 국제학술대회를 처음 가졌다는 의미로 높이 평가된다. 독일 함부르크대학 그리고 베를린 자유대학에서도 고구려관련 학술대회가 올해9월과 10월에 각각 열린다고한다. 중국과 일본파학자들이 주장하는 고구려는 중국의 식민지였다는설과 한국파 학자들이 주장하는 고구려는 우리나라였다는설이 팽팽하게 맞서는가운데 고구려유적은 유네스코 (UNESCO)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에서 북한과 중국의 이름으로 동시에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고구려유물하면 벽화가 특히 생각나는것은 그만큼 벽화를 통하여 고구려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볼수있었기 때문이아닌가한다. 5세기말 6세기초에 그려진 무용총은 지금은 중국 땅인 길림성 집안현의 여산 남쪽 언덕에 있는 고구려의 벽화 고분이다. 그 벽화에서 유난히 나의눈길을 끈것은 군무를 추는 선남선녀들의 모습이었다. 아주 뛰어나게 현대적인 감각의 복장은 말할나위도없고 그들의 낯설면서도 동시에 유연한 어깨춤의 몸짓은 나를 그 벽화속으로 뛰어들어가 그들과 함께 더덩실 춤추고싶게 하는 것이었다. 고구려 사람들의 소매 춤은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널리 알려졌던 고구려 공연예술 장르의 하나였다한다. 춤은 일반적으로 춤추는 사람의 수에 따라 홀로 추는 춤, 둘이 추는 춤, 여럿이 추는 춤으로 나뉘며, 춤추는 사람이 도구를 쓰는지의 여부에 의해 도구를 지닌 춤과 그렇지 않은 춤으로 다시 나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이런 다양한 형식의 춤이 모두 나타난다.?춤을 이끄는 사람과 열을 이루어 춤추는 사람까지 모두 6명의 무용수가 남아 있는 무용총의 춤장면에는 반주자가 등장하지 않는 대신 7명으로 이루어진 합창대가 등장한다. 3명, 2명으로 나뉘어 줄을 이룬 무용수들의 옷차림은 춤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색의 배열을 고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미 고구려시대에도 춤과 같은 특수한 분야는 전문적인 기획과 연출을 바탕으로 공연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우리가 사는 이시대에 춤의 공연이 갖는 가치는 어디있을까? 하고 물음은 공시성과 통시성의 교차점에서부터 새로운 전통성의 수립이 시작되는 것이기때문이다.
우리 전통무용 기법은 현재 어떻게 전수되어가고 있으며 무용인들이 고민하는 우리 무용의 해답이 혹시 이미 다 나와 있는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되는것은 무용총의 고구려 벽화에 동이전 ‘답지편 (踏地編)’에는 승무와 꼭 같은 춤사위가 나오기 때문이다. 고분벽화는 죽은 자를 위한 예술이지만 살아있는 오늘의 우리를위하여 많은 답을 제시하는것같다. 보다 많은 춤공연이 재미한인 커뮤니티에서 행하여짐을 행복한마음으로 지켜보며 우리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우리춤전수의 현주소를 화두로 꺼내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