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길을 찾아 책 속에 파묻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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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음식물로 체력을 발육케 하고 독서로 정신력을 배양한다. 흔히 염세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의 이 말이 맞다면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60대 한인 김 루시아(63) 여사는 으뜸 정신력의 소유자라고 할 만하다.
2002년부터 지난달까지 무려 505권, 사흘이 멀다 하고 한권씩 먹어치운 김 여사는 한민족책사랑무궁화협회(회장 박우서)가 주최하고 본보가 특별후원한 제2회 독서왕 선발대회에서 다독상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나를 좀 돌아볼 수 있고 극중(책중) 사람과 내 인생을 비교해보면서 위로도 되고 도전(자극)도 되고요.”
지난 8일 SF한인회서 열린 시상식 뒤 부리나케 한인회도서관을 뒤지고뒤져 새로 읽을 책 한보따리(17권)를 챙긴 김 여사가 대출목록을 적어내려가다 내뱉은 독서의 이유는 이랬다.
비닐봉지에 담은 책의 종류도 다양했다. 이외수의 장편소설 ‘훈장’을 비롯해 김문권의 ‘이조궁중비화’ 황헌식의 ‘창녀와 철학자’ 등등.
“저는 장르를 가리지 않아요.”
봉제사 2급기능사로 89년1월 취업차 도미했다 눌러앉아 가족을 불러들인 그는 요즘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한 레스토랑에 나가 일하는 등 나이도 나이려니와 시간적으로도 책읽을 시간이 빠듯할 것 같은 사람이다.
“시간이 따로 있나요. 만들면 시간이지요.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2시간동안 읽고, 집에 와서 자투리시간이 나면 읽고 자기 전에는 꼭 읽고, 그러다보니 좀 많이 읽게 됐네요.”
집에서 읽을 때의 자세는 흡사 도를 닦는 것 같다. 책을 바닥에 펴놓고 정자세로 앉아 정독한다. 때문에 양 어깨가 약간 안으로 굽어지고 고개는 숙여지고 허리도 쑤셔 하루에 한시간가량 동네를 산책하면서 푼다.
평양 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까지 나온 김 여사는 소녀 책벌레에서 할머니 책벌레가 되기까지 도대체 몇권이나 읽었는지 자신도 모르지만 그 많은 책 가운데 딱 한권을 고르라면 펄벅의 ‘여자의 천막’을 꼽는다. 전공은 가정학이지만 이것저것 많이 읽다보니 ‘무료인생상담소’라도 내봤으면 하는 꿈을 가질 정도로, 식당일을 그만두면 ‘인생의 뒤안길’이란 제목으로 책을 한권 써봤으면 하는 꿈을 꾸고 있을 정도가 됐다.
한글서적이라야 고작 30여권 정도인 SF시립도서관은 더이상 가봤자 보고 또 본 책이어서 비록 낡은 책 투성이지만 한인회도서관 출입이 잦아진 김 여사는 “누가 시간이 있는 사람들이 하루에 한 3시간씩만 봉사를 하면 저 좋은 책들이 썩지는 않을텐데”라며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내가 저기서 책관리도 하고 인생상담도 해주고 말동무도 해주고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시상식에서 김용민(알바니하이10) 군은 어린왕자을 읽은 소감을 잘 정리해 독후감 부분 대상을, 동생 동민(오션부초등5) 군은 아차상을 각각 차지했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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