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
벌써 몇주째 창밖에서 떠날 줄 모르고 푸른 가을 하늘에 진을 친 흰 구름들이 깃털 쇼를 하며 온갖 아양 난리 궁상 법썩을 떨었지만 나는 시큰둥 할 뿐이었다. 어느 도시 노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일 “눈만 뜨면 코 베어가는 이 날 강도 같은 세상에” 언제부터인가 컴퓨터 화면이나 셀폰 전화, 디지탈 카메라 같은것들이 나의 얼굴에 쩍 들러붙어 떨어질 줄을 모른다. 무조건 무대뽀식으로 내 몸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온갖 잡동사니 전자제품들. 성능 좋은 컴퓨터를 구입했다고 새 친구 만난듯 희희낙낙하던 때가 엇그제 같은 데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자신이 “이것들” 에 의하여 잠식되어 버린 것이다. 사이보그가 따로 없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 에서는 주인공이 벌레로 변한 자신에 경악을 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시대를 초월한 운명의 부조리성과 인간존재의 상실감이 보인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삶인가?
나의 상황이 이렇게 삭막하고 잔인무정하다 보니까 가을하늘의 덧없는 깃털 구름쇼는 안중에 없다. 그런데 와아~그런데 이게 누군가. 이게 정말 에드워드 쫑 인가? 그의 편지를 펴보니 간단했다. “ 백종민, 어디선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숨 쉬며 살아있으면 연락을 하라.” 그런데, 옛날주소록을 뒤져 가을편지를 쓸 정도가 됬으면 좀 더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문장을 만들어 보낼 수는 없는가? 하지만 생각해 보니 쫑은 늘 그랬다. 성품이 점잖다고 할까 쿨 하다고 할까. 그에게 전화를 걸며 나는 혼자 중얼거린다.
“쫑, 하나도 안 변했구나.” 아직도 장가를 안 갔다고? 아직도 어머니 하고 같이 산다고? 아직도 선을 보고 있다고? 결혼해서 2세를 낳아 기르고 싶다고? 아직도? 아직도…. 그리고는 아는이들 소식 주고 받기에 바쁘다. 하기사, 한 십년은 족히 연락이 없었으니까. 우리는 모두들 1980년도 언젠가 길지 않은 몇 해를 같이 이스트베이 한인봉사회에서 커뮤니티 봉사일을 하며 알게된 동료 직장인들 이었다. 그 때 무엇이 그리 우습던지 모두들 가끔 누군가가 조그만 농담이라도 할라치면 목젓까지 보이게 깔깔 숨 넘어가듯이 웃어가며 일하던 생각이 난다. 우리 커뮤니티에 그리고 우리 가슴에 쌓인 것들이 어느 때는 너무 무거워서 힘겨울 때도 많았다. 사실 어느 면으로 보면 누구나 겪는 평범한 일들 인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커뮤니티 일을 하며 겪은 일들은 우리의 역사가 된 것이다. 아직은 가끔 이야기하며 기억하는 것으로 밖에는 존재하지않는 그런 역사이지만-. 우리의 역사는 누가 어떤 식으로 기록을 할 것인가? 쫑과 조만간 모두들 만나자고 샌프란시스코에 놀러오라고, 나도 로스엔젤레스엘 가면 연락을 하겠노라고 약속을 주고받았다. 이제 가을하늘 깃털 쇼가 그리 귀찮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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