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문자<자영업>
한국에 친일파의 명단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그 명단 속에는 우리가 젊었을 시절에 잘 알려졌던 사회의 저명인사도 있고, 유명한 작가도 있으며 총장을 하셨던 존경하는 선생님의 이름도 들어있었다. 그 명단이 있게된 기준이 무엇인지는 확실치가 않으나 기라성같은 이름들로 인하여 인명사전이 잘못 전해진 것이나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총장님 한 분은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분이었는데, 내가 받은 졸업장에 그 총장님의 이름이 있어서가 아니라 외모에서 풍겨오는 인품을 좋아해서 사람이 나이 먹은 후에 그러한 인상을 하고 있다면 참으로 존경할 만한 인품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하였었다. 그 분은 학생시절에 너무나도 성적이 뛰어나서 일본인 교수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하였다.
일본이 식민지 정책을 가혹하게 하였어도 일본인 교사들은 훌륭한 조선 학생들을 아끼고 사랑했던가 보다. 그러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기 때문에 그러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
국가가 힘을 잃고 우리가 비록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해도,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없앨 수는 없었으므로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예술계에도, 체육계에도, 학계에도, 상업을 하는 사람들도, 또 사법계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과 심지어는 도지사도 있고 군관학교에간 사람들도 있었다.
그 분들은 식민지하에 있었을망정 조선인의 우수한 지도자들이었다. 그 지도하에는 당연히 일본인들도 있을 것인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일본인들보다도 더욱 노력을 많이 하였을 것이었다. 그 분들이 얼마나 조선인들에게 해를 끼쳤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적어도 같은 민족에게 자부심을 심어주었다고 믿고 싶다.
여러 가지 이유로, 또는 가난해서 농사를 짓고 노동을 해서 살았다고 해서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많아진다고는 생각되지가 않는 것이다. 일제 말기에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놋그릇과 수저까지 수집해 갔다는데, 힘들여 지은 곡식을 바치거나 노력동원 또는 신사참배를 함으로써 타의 일 망정 일본을 위해서 했다고 볼 수 있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거의 모두가 그랬다.
그 때에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 있었다면, ‘열심히 해서 일본 아이들 보다 뛰어나게 하거라.’ 아마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사회에 나가면 지도자가 되어라. 그래서 조선인을 위해 무엇인가 보람 있는 일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늘 지배만 받아서야 되겠나. 비록 일본의 치하에서라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른 다음 친일파였다고 철없이 구는 사람이 있다고 할 지라도 아마 그렇게 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미국에 살면서 열심히 자녀를 키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우리 일세들이 믿거름이 되어서라도 이세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우리가 우수한 민족인 것을 굳게 믿기 때문에 가능하다. 식민지 시대의 부모들처럼 우리도 자녀들에게 희망 걸자. 항상 꿈을 키우자. 이 세상의 가치관이란 변하지 않으므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