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자<주부>
이번 여름휴가를 센츄럴 유럽으로 정하고 첫 기착지가 독일의 뮌헨이었다. 공항에 즐비하게 대기하고 있는 택시들이 모두 크림색 머세드 벤츠이고 도로 위를 주행하는 차량들도 벤츠, BMW, 아우디, 우리가 타는 코치도 육중한 벤츠 버스임에 역시 자동차 강국의 면모를 여실히 보는 순간이었다.
20여 년 전 처음 미국에 왔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자동차가 홍수를 이루지도 않았고 주택가나 시내 도심에도 어느 정도 파킹이 자유로웠다. 하나같이 새 차들이기보다는 몇 년씩 타서 찌그러지기도 하고 칠이 벗겨진 것도 있고 광택이 없는 차도 많았다. 덜덜거리는 오래된 낡은 복스웨건을 뒤따르며 그 번호판에 적힌 라는 문구를 읽으며 그네들의 재치 있고 기발한 착상에 즐겁게 웃을 수 있었다.
모든 젊은이들처럼 큰 아들도 자동차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가씨들은 고급차를 선호하니까 걸 헌팅을 위해서라며 스포츠카를 샀었다. 예쁜 아가씨 옆에 태우고 마음껏 즐기겠다던 예상과는 달리 도난 당하거나 긁힐까 봐서 아무데나 파킹도 못하고 주말에나 드라이브 한번 하고는 세차하고 광택 내며 보관만 하다 보니 차가 사람보다 우선이 된듯하였다.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위하다가 2년 정도 지난 후 팔고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했다.
클래식car에 관심이 많은 남편도 해마다 열리는 car show에 일 년에 한두 번씩 시부모님과 함께 다니다가 지인으로부터 55년형 캐딜락을 샀었다. 육중하고 견고한 차체는 보관 상태가 좋아서 지극히 고급스럽고 우아해보여서 운전하고 나가면 다른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즐거워하고 행인들도 뒤돌아보며 손을 들어 환호하는 모습에 만족해 하지만 차체가 커서 파킹이 여의치 않고 취미 삼아 주말에나 가끔씩 사용하다 보니 점점 무용지물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사는 집의 그라지는 아주 작은 차만 들어갈 수 있는 옛날식이라서 이웃집 그라지를 렌트하여 보관해야만 클래식 카 만 전문으로 하는 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관하다가 그 차는 외국으로 팔려갔고, 두 남자들의 고충을 보면서 나의 소형차 혼다 시빅이 얼마나 간편하고 실용적인지 세 번째 차를 바꾸면서도 같은 차를 고수한다.
타는 차가 고급일수록 경제적 지위의 상징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하찮게 보일 테지만 3년 정도 타다가 새 차로 바뀌는데 매번 oil change만 제때에 해줄 뿐 아무런 고장도 없이 자동차의 기능을 모두 완수해주니 아무런 불편이 없다. 하루 종일 복잡한 거리에 놔두어도 염려 없고 지금처럼 파킹자리가 부족한 때에도 어느 정도의 작은 공간에서도 선택의 여유가 있어서 마음 편하다 보니 은퇴 후에도 시빅을 타게 될 텐데 그런 나를 보는 이들은 변변치 못한 삶이라고 여기겠지만 나름대로 마음의 여유를 부린다면 번호판에 이런 문구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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