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리타를 피해서 달라스로 향하는 45번 고속도로는 차량행렬로 가득 차 있었다. 차량행렬은 멈추었다 다시 움직이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고, 평균 시속은 3마일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전날 밤까지 CNN 화면으로 계속 지켜보던 리타...... 붉은색 동그라미로 표시된 “태풍의 눈”은 중심부에 145 마일의 강력한 태풍을 동반하고 시속 10마일의 속도로 휴스턴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몇 년 전에 허리케인에 관한 기록영화를 본 일이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구름기둥이 중심부에서 강력한 회오리바람과 함께 회전하고 있었다. 뜯겨진 지붕과 뿌리 뽑힌 가로수와 자동차 같은 물체들이 회오리바람을 따라 공중으로 말려 올라가고 있는 장면도 나왔다.
뉴올리온즈의 수재 현장이나 애스트로돔 내의 수재민 생활 참상을 보아온 터라 더 이상 휴스턴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 우리 세 식구는 달라스 행을 결심했던 것이다. 차량 행렬 속의 사람들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을 허리케인을 생각하며 초조함과 지루함에 모두 지쳐 있었다.
대자연의 힘 앞에 인간들은 이렇게 무력한 것인가. 우주선을 쏘아대고 달나라까지도 다녀오고, 핵탄두를 적재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적성국가의 어느 도시를 순식간에 초토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인류도 대자연의 힘 앞에는 한낱 바람 앞에 놓여있는 촛불 신세 밖에 안 되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파키스탄 대지진, 남태평양을 휩쓴 쓰나미...... 등을 생각할 때 그렇다.
어느덧 밤이 되었다. 집에서 갖고 온 한국 신문들을 차 속에서 펼쳐본다. 그런데 바람 앞에 놓여있는 촛불은 한국에도 있었다.
그동안 인천 자유공원 언덕 위에 48년 간이나 우뚝 서서 인천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물인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험악한 얼굴을 한 무리들에 의해 하루 아침에 철거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앞장서서 막을 생각도 능력도 없는 것인가. 신문에 난 사진을 보니 무뢰한들은 동상을 당장 끌어 내릴 듯한 험악한 얼굴들이었다. 20대 또는 30대의 청년들의 얼굴도 보이고, 40대 또는 50대의 얼굴도 보인다.
그 얼굴들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겨 본다. 한국전쟁 당시인 55년 전에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젖먹이 시절이나 철없는 유년시절을 보냈을 저들이 무엇을 안다고 저러는 것일까. 전쟁을 직접 체험해 보지 못한 저들이 전쟁의 참혹함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가운데 저렇게 무리지어 동상철거를 외쳐대고 있다.
맥아더 장군은 미국인들 가슴 속에 존경받는 영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금 한국의 고위층은 이와 같은 데모대의 행동에 대해 “만약 동상을 훼손하면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따위의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궁창 물에 콧물 떨어지는 듯한 이와 같은 태도는 사태해결에 아무런 힘도 도움도 주지 못할 것 같다. 만약 데모대들이 동상을 쓰러뜨려서 밧줄에 매고 길거리로 끌고 돌아다닌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정부는 물론 미국국민들의 큰 분노와 미움을 사게 될 게 뻔하다. 사자의 꼬리는 맨손으로 잡아당기라고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다른 한편에서는 동상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데모대도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은 정부의 단호한 대처가 없는 한 맥아더 동상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풍전등화...... 바람 앞에 촛불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인천 시민들이 모은 성금으로 세워져서 그동안 자유공원 언덕에서 자유 민주주의의 상징물로 튼튼하게 인천 앞바다를 비춰주고 있던 맥아더 동상. 지금 바람 앞에 흔들리고 있는 맥아더 동상......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맥아더 동상을 천배만배 강력한 자유수호의 등대불로 자리 잡게 할 수 있는 길은 자유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전쟁의 공포가 어떤 것인지를 직접 체험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는 수많은 한국인들의 몫이 될 것 같다.
자유공원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맥아더 동상이여,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강력한 등대불 되어 짙은 어둠과 안개를 뚫고 길이 빛나거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