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화<주부>
가을을 참 좋아하는 난 이 계절을 슬프게 즐기는 타입이다.
작년 가을은 정말 이 계절에 깊게 빠져서 내 감정에 엄청 헤매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그 좋아하는 가을이 오는 게 슬며시 두렵기 까지 했는데, 그래도 변하고 오는 건 계절, 가을.
절대로 이번 가을은 그저 여름과 겨울 사이에 있는 시간 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교육을 여러 번 시켜 머리에 박아 놓았건만 마음은 다시 슬프게 즐기는 그 계절을 심어가고 있다.
결혼하고 ‘아줌마’ 소리를 당연하게 듣는 엄마에게도, 아내에게도 봄 혹은 가을은 다시 여인임을 느끼고 여인으로 대접받고 싶은 그런 계절이 아닐지.
왠지 마음이 가라앉고 조금은 쓸쓸하고 문득문득 멍하게 창을 바라보고 낮은 한숨도 새어나오는, 무르익은 하늘과 나무와 바람이 전해 주는 오묘한 조화를 마음 설레게 느끼며 또 작은 외로움에 빠져 드는, 그렇지만 그런 느낌들이 결코 싫지 만은 않아서 또 그곳으로 몰고 가는 그런 기다림, 즐거움이 우리를 다시 한 여자로 느끼고 싶게 하는 건 아닌지.
내 이야기도 아닌 아름답고 슬픈 노랫말이 왜 그리도 찡하게 다가와 마음을 휘어잡는지, 젊은 아이들 나오는 멜로드라마에 내 감정 고스란히 실어서 가슴 아프게 외로움도 사랑도 함께 느끼는지. 아마도 아줌마 다 되었다고 푸념 반, 인정 반하면서 나에게, 남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지만 내 안에 있는 여린 감성은 감출 수 없기 때문이 아닐지. 이런 감성을 간직 할 수 있는 건 결혼해서 아이 낳고 주부로, 엄마로 살아도 여자들에겐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게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 된다. 그게 우리들 안에 있는 ‘소녀’다.
여자들에게 ‘소녀’는 있었다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항상 나의 일부로 있다가 시도 때도 없이 표현되고 드러내고 싶은 그런 나의 또 다른 모습. 내 얼굴의 일부가 되어 가는 주름, 칙칙하게 물들여져가는 피부, 변화된 체형을 아직 다 받아들일 수 없지만 거울 앞에선 거짓 없이 보게 되는 나. 그런 나의 모습과는 또 다른 내 안에 항상 있는 ‘소녀’의 모습을 버리지 않고 갖고 있지 않은가.
소녀 적인 마음엔 여러 가지 느낌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아마도 순수하고 자유로운 열정이 있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그래서 이상적인 외모와 성격의 이성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서 전혀 나와는 어울릴 것이 없는, 물론 나이는 기본 열 살에서 스물까지 차이가 나는 연하의 배우들에게 마음을 주어 버리지 않는가.
“바빠 봐라. 그런 한가한 감정이 생기나.” “너 아직 젊은가 보다 아직도 소녀다, 사랑이다 하는걸 보니.” 이렇게 기운 쪽 빠지는 소리하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바빠도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소녀이고, 가을은 내 마음을 꽉 채우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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