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막아 가난한 자들이 외치는 소리를 외면하면… 내가 외칠 때 누가 들어줄까? 늦게라도 기다리던 인디안 환자들을 더 보았어야 했는데…”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느니라…”
의사생활 37년 동안에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때가 여러 번 있었다.
특별히 젊은 나이에, 돈을 잘 벌었을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었다.
-토요일 오후, 진료를 마치고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모처럼 멀리 여행을 가기로 이미 계획을 하였는데 느닷없이 찾아온 돈 없는 환자가 진료실 밖에서 울면서 간호사에게 진료를 받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소리가 들렸다.
(“몸이 아파 다 죽게 되었습니다. 돈도 없구요. 나 좀 살려주세요. 원장님 좀 보게 해주세요.”
“원장님은 이미 퇴근하셨습니다. 그러니, 응급실로 가세요!”
“아냐! 간호사 나 좀 도와줘! 응급실에 갈 돈이 없어요!”
“원장님은 없소! 이미 갔다니까요.”)
그 순간 나는 환자와 간호사가 싸우는 거친 목소리를 들으며 “환자나 볼까? 아냐! 안돼! 저 환자를 보게 되면 이미 계획한 여행은 포기해야 되잖아…”
결국 나는 숨을 죽이고 그 환자가 가기를 기다렸다가 뒷문으로 도망가듯이 사라졌다.
***
그리고 세월이 흘러 머리가 희어지며 허리도 구부러진 나이 많은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나는 과테말라로 의료선교를 다니는 꽤나 인정 많은 의사가 되었다.
과테말라 의료선교를 갈 때마다 느끼는 묘한 감정이 있었다.
-수도 없이 많은 마야의 인디언들이 의사인 나를 보고자 길게 줄을 서서 뙤약볕에서 하루 종일을 기다리곤 하였다.
꿰첼떼낭고와 치말떼낭고의 산간벽지를 찾아간 것이 어느덧 6년이 되었기에 나는 과테말라 의사나 된 듯 하였으며 스페인 말도 곧잘 하여 통역도 없이 환자를 하루에 150여명을 보아야 했다.
아침 일찍부터 휴식시간도 없이 점심이나 겨우 먹은 후 매캐한 냄새가 나는 지저분한 마야의 인디언들을 진료하다 보면 어느 듯 오후 6시, 그리고 곧장 캄캄해진다.
어느 때는 촛불을 켜놓고 환자를 보다보니 줄 약품도 없었다.
결국 이쯤에서 환자 진료를 끝내야 하였는데 아침부터 기다렸던 인디언들은 돌아가기를 거부하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이봐! 다음에 오라구! 이젠 다 끝났어!”
그리고 교회당 문을 닫아버렸다. 그런데 잠시 후 교회당 문을 꽝꽝 치며 아우성치는 인디언들이 마치 폭도처럼 거칠어졌다.
도망가듯이 진료팀은 대기시켜 둔 자동차에 올라 묵묵히 선교센터로 되돌아오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귀를 막아 가난한 자들이 외치는 소리를 외면하면… 내가 외칠 때 누가 들어줄까? 늦게라도 기다리던 인디안 환자들을 더 보았어야 했는데…”
같이 간 선교사(목사)님은 양심에서 들리는 이 목소리를 듣고 한탄을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의사들은 지칠 대로 지쳐 눈을 감고 있었다.
의사가 된지 37년이 되어서야 나는 나의 귀를 조금씩 열고 가난한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를 듣고 있는 듯하였다.
“37년이나 되어서야?”
“예. 부끄럽게도, 37년이나 되어서야 말입니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내가 부르짖을 때, 과연 누가 나의 아우성 소리를 진정으로 들어줄까?”
“아무도 없소!”라고 누군가가 말하는 듯하였다.
“아무도 없다구요? 아무도?”
“그렇군요.”
-다음번엔 과테말라 산골에 가서 인디언들을 위해 진료를 할 때, 할 수 있으면 끝까지 그리고 갖고 있는 약품을 모두 주고 오자.
그리고 남의 부르짖음을 먼저 들어주자.-
그러면 내가 부르짖을 때, 누군가 나의 부르짖음을 들어주리라.
과테말라의 높은 산 속, 밤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마야의 별들이 내게 조용히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연규호
약 력
내과의사, 소설가
국제 펜클럽 미국 & 한국회원
문인협회회원, 오렌지 글사랑모임회원
소설:<샤이엔><사랑의 계곡>
<거문도에 핀 동백꽃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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