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 교수가 지난 11일 유명을 달리했다. 1909년생이니 올해 95세다. 이웃(클레어몬트)에 살던 세계적인 석학이 죽었다고 하니 여간 서운한 게 아니다. 10번 프리웨이를 타고 클레어몬트를 지날 때마다 ‘여기에 드러커 교수가 살고 있지’라고 자주 생각했기에 아쉬움이 더하다.
드러커 교수에게는 늘 ‘경영학의 창시자’니 ‘컨설팅의 아버지’니 하는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실제로 그의 경영이론은 오늘도 강단에서 강의되어지고 있고 기업 컨설팅에 활용되고 있다. 기자 역시 그의 책을 읽으며 독특한 인사이트와 사람 중심 가치관에 감동 받곤 했다. 그러나 기자가 무엇보다 그에게서 배운 최고의 것은 이론이 아닌 철저한 자기 계발 정신이었다.
드러커 교수는 3년에 한번씩 전공 분야를 바꾼다. 어떤 분야든지 3년 정도 공부하면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질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는 이런 연구태도를 자신에게 적용, 3년마다 주제를 바꿔왔다. 기업은 기본이고 비영리기관, 에도시대 일본 문화, 고려자기, 로마사 등이 다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죽기 직전에는 페루 고미술이 연구 대상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은 재미있다. 동서를 오고가고 고대와 현대를 넘나든다. 경영학에 깊은 지식이 없어도 쉽게 이해된다. 그리고 이 사람은 천재는 아니지만 정말 공부를 많이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는 또 건강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90이 넘은 나이에도 테니스를 치며 체력을 유지했고 숙면을 위해 오후에는 커피나 콜라 등 카페인이 들어있는 음료는 입에 대지 않은 절제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일보 2005년 신년 특집 인터뷰에서 테니스를 치느냐고 질문하자 “테니스 대신 피트니스 코치를 두고 운동한다”고 답했었다.
그는 또 한국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일본을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을 알게 됐고 고려자기와 조선 백자의 매력에 깊이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1950년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변화 모습은 그의 주요 연구 주제였고 현대 사회의 변동을 설명할 때는 예제로 사용됐다.
‘기업가 정신이 가장 왕성한’ 한국을 선진국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드러커 교수가 마침내 숨을 거뒀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던 그다. 아쉬운 마음에 책장에 꽂혀 있는 그의 책들을 꺼내 보니 볼펜으로 밑줄 그은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봐도 인사이트가 넘치는 글들이다.
정대용
<경제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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