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문자<자영업>
구세군의 종소리가 12월의 문을 엽니다. 거리에는 여기저기 오색 등불이 밝혀집니다. 상점에는 물건들이 산더미를 이루고 음악이 흐릅니다. 분위기는 더욱 고조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싼타에게 편지를 씁니다. ‘싼타 할아버지, 내가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 우체국에서는 아이들의 편지를 북극으로 배달하는 별도의 부서도 생겨납니다. 부모들은 편지를 쓰는 아이들이 너무나고 귀엽습니다. 그리고 어른들도 함께 즐거워지면서 동화와 현실을 넘나듭니다.
“엄마, 진희의 엄마가 그러는데 싼타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대.” 어린 시절의 나의 딸이 말했읍니다. “진희는 참 불쌍하구나, 그런데 너의 싼타 할아버지는 안 돌아가셨어.” 안심하는 나의 아이. 일년 후 미국에 와서는 이제는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엄마. 한국에서는 싼타가 ‘made in Korea’를 주었는데 미국에 오니까 ‘made in U.S.A.’를 주는걸.”그거야 싼타도 선물을 사야만 하니까 그런거지 뭐. “그렇구나. 그런데 올해에는 인형을 받았으면 좋겠네.” 부모와 아이들은 알고도 모르는척, 모르고도 아는척 그렇게 12월은 옵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부모가 된 후에도 싼타의 이야기는 여전히 살아있는 동화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상향을 바라봅니다. 우리 서로 사랑을 합시다. 소외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위로합시다. 그 아름다운 행위를 위해서, 푯대를 바라보며 달려갑니다.
내가 처음으로 싼타를 알게된 것은 열성적인 어머니가 2년 과정의 유치원에 나를 입학시킨 첫 해의 크리스마스가 끝난 후였읍니다. 그 때에는 교회내에서 성탄절을 기념하였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선 명절이었습니다. 유치원 선생님이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싼타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은 사람은 손들어보세요.” 세 아이가 손을 들었읍니다. “참 착한 어린이로군요. 싼타 할아버지는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줍니다.” 얼결에 착하지않은 아이가 되어버렸던 나도 다음 해의 크리스마스에는 잠든 사이에 싼타할아버지가 머리맡에 선물을 두고 갔읍니다. 그러나 그 해에는 어찌 된 일인지 유치원 선생님이 누가 싼타에게서 선물을 받았느냐고 묻지를 않았음으로 나도 착한 아이였다는 사실을 입증할 기회는 오지 않았읍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싼타가 찾아오지 않는 아이들이 있읍니다. 그럴때에 아이들과 부모들은 얼마나 서글퍼지겠읍니까. 기쁜 성탄절인데 그런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방법을 모색합니다. 싼타의 복장을 한 사람들도 아이들의 눈앞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어디엔가 있을 ‘성냥팔이 소녀’를 찾아보기도 합니다. 소홀히 하였던 일들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사랑의 계절에 사랑을 전하는 아름다운 손길. 그런데 그 손길이,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차리기가 쉬운 일이겠읍니까. 자신도 모르게 실수를 하는 유치원 선생님도 있고, 그 실수를 미처 깨닫지 못하는 고마운 마음도 있읍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언제나 착한 어린이가 되려는 노력이 항상 있으며, 싼타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른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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